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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menade Dec 29. 2019

묵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세상이 임의로 정의한 시간 개념에 무관심한 친구가 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일일이 계산을 해야 대답할 수 있는 그는,

연말과 새해란 그저 오늘에서 내일이 되는 것일 뿐이라 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의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지고

근황을 묻는 질문에 그냥 그렇지 뭐, 얼렁뚱땅 넘어가다보면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삶은 속절없이 떠내려 가는 부유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거스를 수도 빠져 나올 수도 없는 흐름은 굴레가 되었고

무엇을 바라거나 움직이지 않는게 가장 편한 선택이자 예측 가능한 계획이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뒤집힐 위험이 없다는 안도감과 맞바꾼 것이 있었다.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킬 때 콧 속까지 얼얼해지는 느낌,

두 눈에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때 조용히 터지는 감탄,

낯선 것을 마주했을 때 온 몸이 곤두서는 생경함,

내가 살아서 있다는 감각.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당연하다 여기던 것을 잃고 나니 불안이 엄습한다.

50년 후에 죽으나 내일 오후에 죽으나, 내 생의 의미는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그러면 대체 왜 살고있지?' 죽음처럼 끈질기게 따라오는 의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 저 밑바닥에 착 가라앉은 채

어제와 오늘이 같았고, 또 내일도 그럴 것 같은 시간의 무게에 짓눌린 나는

살아있어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더라.

그 길고 지루한 어둠 속에 안도하며 죽어갈 바에야

부질없는 발버둥이라도 실컷 쳐보겠다 다짐한다.


삶이란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불안한 것이고

그 불안이 나를 움직이게 하며, 움직인 만큼 자유로운 것.

굴레를 완전히 떨쳐내는게 자유가 아니라

굴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 하나 하나가 곧 자유다.



2019.12.29 묵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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