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파고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다시,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 강박에서 체념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손 끝으로 빠져나가 한 장의 글이 되는 것이 왜 그리 힘든 일이었을까.
그 이유를 찾고 싶어 오랜 시간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사실 그다지 하고 싶은게 아니었던 걸까?'
'좋아하는걸 꼭 일처럼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명쾌한 답이 아니라, 내 감각과 의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어제 무심코 집어든 책에서 나이 든 건축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그는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다며 만족해 했다. 건축가이지만 사진가로, 또 작가로서 충만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들이 공간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어떤 일을 왜 하는지, 그것이 자신의 뿌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있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까.
문득 내게 던지던 질문의 방향을 달리해 보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왜 좋아하게 된 것일까.'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아주 오랜 시간 해올 수 있었나.'
'하지 않은 일들은 그 무엇이 나와 맞닿지 않아서 였을까.'
좋음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실행 의지를 부정하지 않으니, 대답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아주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주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내 공간이 없었기에 항상 내가 나 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을 바라왔다. 대학에서는 별 생각 없이 택한 전공이었지만, 간격과 배치만 살짝 다르게 한 디자인 수백장을 비교하며 각각의 느낌을 음미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UX디자이너로 십 년 넘게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틀 밖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드는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상한 것을 적절한 언어에 담아 전달하는 것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한 가지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더 좋은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좋았다.내 상상이 제품에 반영되면 더없이 뿌듯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만함을 느꼈다.
좋아하지만 하지 않은 것들은, 나답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단순 무식한 바람이 문제였고, 그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서 그만의 의미를 찾지 못할때면 쉽게 체념했다. 그래서 혼자 가볍게 즐기려고도 해보지만, 돌아보면 방향 없이 허우적대는 느낌이 들었다. 식물을 가꾸고, 벤치를 만들고, 공간과 디자인에 열중하는 각각의 시간 속에서는 행복하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조각난 경험, 쉽게 날려 사라지는 부스러기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 모든 망설임과 부대낌의 끝에는 똑같은 말이 떠올랐다.
'이거 해서 뭐해.'
놀랍게도 이 말은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씀 이기도 하다. 평생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엄마.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이것 저것 해 보시길 권하지만, 엄마는 매번 귀찮다는듯이 저렇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엄마는 인생 후반부에 유일하게 넉넉해진 시간이란 재산조차 누리지 못하고 조용히 가라앉아 계신다. 어쩌면 나 또한, 같은 말을 되뇌이다 끝내는 허무에 잠겨버리는 것은 아닐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그냥 행하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 없나보다.
좋아하는 것을 직함에 박는건 내가 진짜 원하는게 아니다. 그저 그것들을 통해 내 알맹이를 찾고 싶을 뿐, 그 알맹이가 남보다 탐스럽고 달지 않더라도 상관없으니, 맺어지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 무엇이 되든 그건 그 후의 일이다.
좋아하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선명하게 인식하고,
성취에 대한 기대보다 나답게 즐기는 방식에 집중하고,
그 경험에서 나온 느낌이 증발하지 않도록 언어로 붙잡아 담아보겠다.
그 흔적이 오랜 시간에 걸러지고 익어지면 마침내 나만의 향이 날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흔들릴때면 그 향을 맡고 다시 나로서 고요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