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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menade Jan 16. 2016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두 번째 이야기

  어릴 시절의 삶은 참 단순했다. 가족과 몇몇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 역할을 해내면 충분했다. 학교 매점에서 빵 사먹으면 기분 좋고, 성적이 떨어져 어른들에게 혼이 나면 우울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할이 끝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통째로 달라졌다. 친분 없이도 유지해야 하는 인간 관계가 늘어나고, 세상 속에서 내 몫을 스스로 꾸려나가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흔들렸다. 이 전에는 그저 '좋지 않은 기분'이 좌절, 죄책감, 열패감, 무기력 등등 수 많은 형태의 불안으로 찾아왔고,  순간 삶 전체를 곤두박질 치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당혹스럽고 낯선, 누구에게 꺼내기도, 쉽게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불행'이라는 그림자.


휘트먼, <내 자신의 노래 32> 중에서


 그는 불행하고, 그녀는 행복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행복의 정복> 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몇 가지 개인의 기질을 분석한다. 걱정과 질투, 권태, 죄의식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어떻게 인생을 난폭하게 쥐고 흔들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의 어떤 점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가?  여기, 불행의 개인적인 근원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경쟁에 오염된 사람들


어느 봄 날, 나는 학생 몇몇과 함께 캠퍼스 기슭의 숲길을 거닐었다. 숲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었지만 그 야생화 중에서 어느 것 하나의 이름도 아는 학생이 없었다. 하긴 그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꽃 이름 따위 알아봐야 돈벌이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텐데.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개인이 단독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삶이란 승자만이 존경받는 승부요, 경쟁이라는 일반화된 생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지나치게 키우는 결과를 불러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은 지나치게 냉혹하고 집요하며, 필요 이상으로 근육을 혹사시키고 의지 또한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런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되는 세대는 신경이 피로하고, 여러 도피 현상을 일으키며, 쾌락 추구를 긴장되고 어렵게 느끼다가, 마침내 인생이 고갈될 것이다.




인생의 끝, 권태


 권태가 생겨나게 되는 필수조건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상상하게 되는 지금보다 바람직한 상황과 현재 상황의 대조에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사람은 권태를 느끼게 된다.

 권태는 꼭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 생긴다면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다.


사람들은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데, 자극이 지나치게 많은 삶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환희에 가까운 감격이야말로 즐거움의 필수 요소라고 여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격을 느끼기 위해서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근본적인 만족감을 표면적인 쾌감으로, 지혜를 얄팍한 재치로, 아름다움을 생경한 놀라움으로 바꾸어버린다.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걱정의 심리학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그 문제에 맞닥뜨려야 할 때를 제외하면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보다 꼭 필요할 때에 적당하게 고민하는 침착한 태도를 기르면 행복과 능률을 엄청나게 증진시킬 수 있다. 곤란하거나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모든 자료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즉시 그 문제를 깊이 숙고해서 결정을 내려라.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결코 그 결정을 번복하지 마라. 망설임만큼 심신을 지치게 하면서 쓸데없는 것은 없다.


 어떤 불행이 닥쳐오면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직시하고 나서는, 그 불행이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적절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제시해보라.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나 자신의 전체를 뒤흔들 만 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질투의 함정


질투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이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는 데서 생긴다. 내가 나 자신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의 월급을 받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만족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결코 나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두 배나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질투가 많은 사람의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이 지닌 것에 대한 만족감은 사라지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눈앞을 가리게 된다.


 현대는 특별히 질투가 만연해 있는 시대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를, 여자는 남자를, 정숙한 여자는 정숙하지 않은데 처벌받지 않는 여자를 질투한다. 질투가 다른 계급과 민족, 다른 성 간의 정의를 이룩하는 주요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질투의 결과로 빚어진 정의는 자칫 최악의 것, 즉 불행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증가시키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대부분 착각이겠지만 자신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려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해망상


다음은 피해망상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는 네 가지 원칙이다.


 첫째,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인간의 본성으로 보아 이타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기적인 동기가 없으면 열정은 생기지 않는다. 성자처럼 남을 위해 살아보려는 노력은 일종의 자기기만과 연관되고, 자기기만은 쉽게 피해망상으로 이어진다.


 둘째,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당신의 재능을 남들이 높게 사지 않는 것은 그들의 오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지 마라. 만약 그런 확신을 방치하게 되면, 당신이 인정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음모가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그 믿음은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쉽게 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 그들이 당신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넷째,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직업과 관심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해코지하는데 집중할 여력이 없다. 제아무리 운이 나쁜 사람이라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악당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복의 정복>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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