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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랑 단둘이 여행, 열한 번째 날

나와 타자의 경계에 서서.

by 인생여행자 정연
총 22박 23일의 여행, 그 한가운데 서있다. 오늘로 딸이랑 단둘이 여행 11일째.


여행 중반에 접어들면서 지난 열흘의 시간을 회고해보고 싶어 연필을 잡았다. 하지만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삶이 아니듯, 세세한 열흘의 여행 경험들의 회고가 아닌, 오늘의 돌아봄의 기록이 되었음을 밝힌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거워서인지 그 말이 무슨 뜻일까 했다. 오늘 점심까지는.


어제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하던 딸이 오늘 아침엔 죽을 먹고 싶다고 해서 왕복 한 시간 운전해서 홍게 죽을 사다 줬는데 그걸로는 배탈 해결에 부족했다. 결국 아이 손을 잡고 제주 표선 면사무소 근방 의원을 찾았다.


모르는 동네에서 믿을 만한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소중한 몸을 다루는 곳을 찾아갈 때 초록색 창에 그냥 검색하기엔 뭔가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굿닥’을 이용한다. 병원 관련 세부 정보와 리뷰까지 함께 담고 있어서 갑자기 병원 갈 일 있을 때 이 어플을 연다.


근방 병원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을 찾았다.

간호사분이 우리 둘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여행객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답했더니 데스크 뒤 사무실로 들어가선 다른 고참(?) 간호사가 나와서 말한다.


육지에서 여행 오신 분들은 진료가 안됩니다. 죄송하지만 인근 보건소나 사거리 건너 다른 병원에 가보세요.


이유는 얼마 전 ‘육지’에서 온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병원을 얼마 간 폐쇄했어서 다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난감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문 앞에서 내쳐진 느낌이랄까?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당혹감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혹시나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됐다.


알겠다고 서둘러 대답하고 다른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대략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해외 방문 후 귀국한 자, 육지에서 온 자는 진료가 안된다.’




인근 다른 병원을 찾아서 감사하게도 꼼꼼하게 진료를 받고 장염 증세 약 처방도 받았다. 한숨 돌리고 나서 곱씹어 생각해본다. ‘육지에서 온 자’의 의미에 대해.


1) 타국에서 온 자와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는 건, 이 곳이 섬이기 때문인가? 섬의 배타성이 적용된 것인가? 이것이 얼마 전 내가 떠올렸던 질문 ‘무엇이 섬을 섬으로 만드는가?’의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까?


인식 속에서 ‘제주 사람과 육지 사람의 구분’이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게 되는 것일까?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 완도는 육지의 일부처럼 느꼈었는데 물리적, 인지적으로 구분된 커다란 섬 제주는 역시 섬인 것인가?



2) 지금껏 타자로 여겨졌던 기억이 별로 없던 터라 소위 ‘이방인’으로 다뤄지는 상황이 참 익숙하지 않았다. ‘소수자’로서의 경험도 이와 비슷하겠지? 살짝 생각해본다.



3) ‘선 긋기’를 내가 당할 때에는 화가 나더라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녀가 될 때 마음속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감정적인 인내를 넘어서는 논리적인 설득이 필요한데 오늘의 경험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이 부족했다.


이상의 무거운 생각들에 머무르지 않고 이내 난 나와 딸의 삶의 현장, 오늘로 돌아왔다.




숙소로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내게 기대 누운 딸이랑 ‘생로병사’에 대해, ‘희로애락’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픈 것 역시 삶의 일부분이니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열한 살 딸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리라 생각이 들었지만 담담한 말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삶도 긴 여행이듯이, 여행도 삶이니까. 여행 중에 아픈 것도 아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여행을 온전히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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