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여행자 정연 Nov 29. 2020

어떻게 하면 내 생각과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유일어’로 글쓰기에 대한 단상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타자에게 전할 수 있을까? ‘언어라는 그릇이 과연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다가도,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제대로 의사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느낌과 견해를 타인에게 잘 전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똬리 틀고 있음을 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이 잘 만지고 느낄 수 있게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사해서 붙여넣기’처럼 전달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최선을 다해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영과(무료 영어 과외)에서 한인수 선생님은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로 무엇을 전달할 때 중요한 건 ‘구체적인 묘사’라고 매 시간마다 힘주어 강조하셨다. 실제로 영어를 할 때, 소통을 할 때 그 비법을 적용해보면서 구체서의 힘을 느낀 나는 그 이후로 말을 하든지, 글을 쓰든지 할 때 그림을 자세히 그려나가듯이 최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더해 글을 쓸 때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개념’을 오늘 배웠다.


유일어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한 플로베르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거니와, 그에게서 배운 모파상도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代用)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태준, 문장강화, p86)


배혜진 선생님이 십 년 전 ‘문장강화’라는 책에서 접한 개념으로, 그 이후 선생님은 글쓰기 할 때 사전을 펼쳐놓고 어떤 단어, 구, 절, 문장이 제일 적합한가를 따져 물으며 써왔다고 한다. 아장아장 글쓰기 초보인 나로서는 떠오르는 단상이 휘발되기 전에, 쓰기 귀찮아지기 전에 글로 담아내는 훈련을 하다 보니 다작을 모토로 하고 있는데 그녀의 말에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태생적으로 난 ‘발자크형 인간’이어서 무엇을 할 때 꼼꼼히 따져보고 세세한 것부터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다 보니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왔다. 돌아보면 그런 연유에 초반의 열정이 사그라지기 전에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들도 채 꽃을 피우기 전에 시들어버리곤 했다. 글쓰기를 새롭게 시작할 때 수정을 거듭하기보단 ‘써 내려가자’는 표어를 마음속에 내건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끄적거리며 써온 나의 글과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마음속에서 비교해보면서 그 차이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내 안의 무엇을 타자에게 잘 전달하려면 갈고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원석이라도 그걸 그대로 내놓으면 원석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잘 깎고 담아내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수정하고 고민하느라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다면 더 큰 걸 잃는 것이기에 나는 일단 쓸 것이다. 쓰고 또 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글을 다듬을 때 ‘유일어’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오늘의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적어본다.


다작이 중요하다. 다작을 해야 그 과정에서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우고, 실수하면서 다듬어지고 실력도 쌓인다. 바로 양질전환의 원리다. 지식 발전의 형태는 선형적이 아니라 퀀텀식이다. 직선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별 발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모든 게 그렇다. 기타를 치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책을 읽고 쓰는 것도 그렇다. (중략) 나는 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쓴다. 이를 바탕으로 언론에 서평을 쓰기도 하고, 몇몇 회사와는 독서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12년째 북리뷰 코너를 맡고 있다. 매달 몇 권씩 책을 읽고 요약해 CEO들이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책 1권을 소개하려면 대략 그 10배는 읽어야 한다. 10권을 읽으면 적당한 책 한 권을 건지는 정도다. 처음에는 이게 무척 고통스러웠다. 읽는 것도, 요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근데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업그레이드된 것을 느낀다. 책을 보는 안목도 좋아졌고, 빨리 읽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다작 덕분에 일정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조금은 느낀다. (한근태, 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p24)


‘유일어’로 글쓰기 훈련을 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의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A 또는 B를 선택해야만 할 것도 같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조금 더 알 것 같다. 다작과 유일어 글쓰기는 대치되는 것만은 아님을. 쓰고 또 쓰고 다작을 하자. 그러면서 동시에 ‘유일어’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타자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내 생각에 좀 더 이끌려 세상을 바꾸어가는데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덧. 생애 최초 ‘우스트라아사나(낙타자세)’를 처음으로 해봤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다쳤던 허리 통증이 재발될까 두려운 마음에 선뜻 해보지 못했던 아사나인데, ‘기반’이 되는 하체에 힘을 주고 천천히 단계별로 해가다 보니 어느덧 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희열을 느꼈다. 타인의 우스트라아사나가 아닌, ‘나만의 우스트라아사나’였기 때문이리라. ‘유일어’를 찾아가는 여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잠잠히 생각해보는 저녁시간이다.


우스트라아사나(낙타자세) @리노밀레,아쉬탕가요가 p18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