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흥의 DNA (1)

이수만이 거부한 이재의 소리

by 박프로

작년 집집마다 들리는 노랫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다. 내가 살던 하와이 와이키키 외곽의 주택가에서 애나 어른이나 "아파트, 아파트..."을 합창하고 있었다. '어파~ㅌ 먼'이 아니라, 한국식 발음 '아파트'가 울려 펴지 다니 놀랄 일이었다. 알고 보니, 블랙 핑크의 보컬 담당 멤버 '로제'가 미국에서 남자 가수로는 가장 핫한 '브루노'와 함께 부른 '아파트'였다. 난리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골든'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하와이 아이에아 '어파~ㅌ 먼' 여기저기서 애나 어른이나 열창하는 게 들린다. '아파트'보다 더 난리법석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뭔 애들 만화 영화에 어른들까지 저러나 싶었다. 제목도 "케이팝 퇴마사"다. 귀신 물리치는 만화 영화 한 편에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열광하는 꼴이라니...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이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날이 갈수록 인기는 더 올라가고 있었다. 핼로윈, 추수감사절 퍼레이드까지 접수했다. 미국의 새해 카운트 다운 행사에서도 공연이 확정됐다. 단순히 애들 만화 영화가 아니었다. 더빙을 무려 배우 이병헌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남자 주인공 안효섭이 했다. 애, 어른 할거 없이 너무 좋아한다. 100번 본 애들도 있다. 그만큼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독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번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느껴지는 삘이 같을 순 없다. K 팝을 좋아하는 전 세계 팬들은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한국적인 것에 열광한다. 노래, 김밥, 컵라면, 갓, 서울 풍경, 조선시대의 악령과 마을 사람까지 사랑한다.


애들이 좋아하기 시작하면, 희한하게도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 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블랙 핑크의 멤버 로제가 부른 '아파트'가 그랬다. 이번에는 '골든'이다. 케데헌의 3인조 아이돌 여성그룹 '헌트릭스'가 불렀다. '퇴마 요정'이라는 뜻의 헌트릭스 작명이 신박하다. 골든은 아파트와 함께 그래미상 후보로 올라가 있고, 시기상으로나 화제성으로 보면, 골든이 조금 앞선다. 수상이 거의 확실하다.




케데헌은 마치 비티에스 (7명)와 블랙 핑크 (4명)가 공연하는 느낌을 준다. 사자 보이즈가 5명, 헌트릭스는 3명으로 인원수는 살짝 손봤다. 참조한 모델이 있다. 헌트릭스의 루미는 블핑의 제니, 미라는 잇지의 예지, 조이는 트와이스의 채영이다. 사자 보이즈의 진우는 "얼굴 깡패" 차은우다. 진우는 미국의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첫사랑이 됐다.


실제로 노래를 부른 가수로는, 루미는 이재 (김은재), 미라는 오드리 누나 (추해원) , 조이는 레이 아미 (이예은)다. 다들 못 들어본 가수다. 한국계 미국인이다. 진우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 3위를 한 엔드류 최 (최승주)다. 트와이스도 참여하여 'Take Down'을 불렀다. 헌트릭스가 부른 'How It's Done'은 블핑의 'How You Like That'과 비슷하고, 사자 보이즈의 'Soda Pop'은 비티에스의 '버터'를 연상케 한다.


한국인, 한국계의 노래가 세계적인 히트를 치는 것은 K-흥 DNA가 큰 몫을 차지한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조 고구려전'을 보면, "백성들은 노래와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나라의 읍락에서는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 지어 모여들어, 서로 따르며 노래하고 춤춘다. 사람들은 탐욕이 없지만, 좋은 술을 감춰두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나온다. 중국 한족이 보기에 동이족은 밤낮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족속이다. 음주가무의 DNA는 지금도 발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노래방이 많은 데가 없다. 새색시도 노래청을 사양하지 않는다. 미국인이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일반인에게 노래를 청하는 게 자연스러운 나라가 또 있겠는가? 국민 모두가 '카수'수준이다. 한류 아이돌 가수들은 세계가 열광한다.



주인공 루미의 노래를 부른 이재는 가수가 아니다. 가수 지망생이었지만, 손절당하고 작곡가,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13살에 케이 팝 아이돌 연습생으로 이수만의 SM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지만, 10년 후 퇴출된다. 캐이 팝 업계의 대부 이수만은 이재의 소리가 아이돌 노래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맑고 청량한 소리를 원했던 이수만은 허스키하고 한이 담긴 이재의 목소리를 거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재는 나중에 SM에서 곡을 쓰는 프로듀스로 활동한다. 외국의 보컬 전문가들은 이재의 노랫소리가 전형적인 케이팝 아이돌의 노랫소리와는 다른 깊숙한 맛에 색다른 신선함을 느낀다.


케데헌의 오프닝 노래를 들어보면, 이재의 한을 느낄 수 있다. 다른 노래가 영어 가사 속에 간간히 한국어 가사도 있지만, 이 도입부 노래는 전부 한국어 가사다. 외국의 보컬 전문가들은 가사 뜻은 모르지만, 뭔가 슬픈 삘이 온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그게 한이라는 걸 안다.


오프닝 노래를 판소리 전문가가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소리꾼은 득음을 위해 폭포수 앞에서 피를 토하면서 노래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 없다.


여담이지만, 이수만이 한 서린 소리를 거부했듯이, 북한의 김일성도 "쇳소리 나는" 판소리의 씨를 말렸던 사람이다. 맑고 청량한 소리만 고집해 지금의 주체 창법이 생겨났다. 그런데도 3대가 즐겨 듣는 노래는 트로트다. 그것도 국악과 판소리가 베이스인 트로트를 좋아한다. 김연자, 나훈아, 주현미, 심수봉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최애 가수다. 북한 주민들도 트로트를 즐겨 듣지, 주체 창법의 뻔한 노래는 기피한다.


비티에스, 블랙 핑크, 헌트릭스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우연도 아니요, 요행도 아니다. K-흥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물들어 올 때, 노 젓는" 심정으로 진심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