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빨리빨리'의 DNA

도끼와 가위로 요리하는 한국인

by 박프로


딸아이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은 '베이쿰' (vacuum: 진공청소기)다. 같이 식사할 때 빠르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흡입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어느 중진 정치인의 수행 비서를 했던 경험이 이런 습관을 만들었다. 식사 스케줄 도중, 그 정치인보다 늦게 식사를 하고, 더 빨리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내 식사를 못 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굶어서야 되겠는가!



K-세프의 특징은 손이 빠르다. 파인 다이닝 (fine dining) 세프보다 대중 한식 세프의 손이 더 빠르다.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식사 경험"을 제공하는 세프보다, 한꺼번에 300명, 400명 분을 준비해야 하는 세프의 손길이 바쁠 수밖에 없다. '흑백요리사 시즌2 '에 나오는 '임성근' 세프는 손길의 빠르기가 넘사벽이다.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과 선재 스님의 손놀림도 전 세계 최고 세프들을 놀라게 한다. 수행하는 동료들과 방문객을 먹이려면, 빨라야 한다. 임성근 세프는 발길도 무지 빨라 '축지법' 쓰는 요리사라는 애칭이 붙는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요리사는 단연 임성근이다. 가방에 도끼를 넣고 다닌다. 갈비 요리할 때, 도끼로 내리치면 해체 작업이 빠르고 정확하다. 소스를 만들 때도 간장과 올리브기름을 병째로 콸콸꽐 "때려 박는다." K-'빨리 빨리'의 DNA가 이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발현되는 거 같다. '짜글이' 레시피를 공개한 유튜브 영상도 1분 42초짜리다. 속전속결이다. 수익 따윈 염두에 없다. K-'빨리 빨리'는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정확한 것도 특징이다. 이 사람의 또 하나 별명은 '5만 가지 소스좌'다. 어찌 보면 "사짜" 냄새가 살짝 난다. 그러나 그는 요리 경연대회 '한식 대첩'의 우승자다. 입담과 쇼맨십으로 요리 방송계를 장악했던 외식업자 백종원과는 결이 다르다. 백종원이 "사짜" 요리좌였다면, 임성근은 "사짜인 듯, 사짜 아닌 사짜 같은" 요리좌다. 입담과 쇼맨십이 백종원 못지않다. 방송 유통 기한이 다 된 백종원 대신, 임성근이 방송계 요리좌로 등극할 것 같다. 생긴 것도 한국인의 평균 얼굴이다. "기생 오라비" 같이 훤칠하고 잘 생긴 '손종원' 세프가 요리계의 '차은우'라면, 임성근은 '선동열'이고 '싸이'다.


K-'빨리 빨리' DNA는 중국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조 고구려전'에 기록된 "고구려인은 성질머리가 급하고, 달음박질하듯 빨리 걷는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단군 할아버지가 산 땅은 "부동산 기획 사기단에 걸려들었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척박한 땅에다 80%에 육박하는 산이다. 한국인의 이런 자연환경이 '빨리 빨리 DNA'을 숙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으면 농사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4계절이 뚜렷해 절기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 빨리 빨리 몸을 움직여야 입에 풀칠이라도 했다. '비빔밥'처럼 식재료를 "때려 넣고" 빨리 만들어 빨리 먹고 빨리 일하러 나가야 하는 고단함이 K-'빨리 빨리'의 DNA를 발효시켜 갔다. 방에서 글이나 읽는 귀족같은 지배층이야 느긋하게 "만만디"해도 먹거리 걱정이 없지만, 일반 백성은 "늦잠 못 자게 서로 깨워주는" 계모임까지 만들 정도로 바삐 움직여야 했다.


K-'빨리 빨리'는 몸만 빠른 게 아니라, 두뇌 회전도 빠르고, 무엇보다 정확하다. 차남이 장남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말이 있다. 장남에게는 모든 게 다 주어지고, 막내는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중간에 끼여 소외된 차남이 척박한 가족 관계라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은 뻔하다. 민첩하고, 진취적이고. 도전 정신 강하고, 반골 기질도 있어야 한다. 레닌, 나폴레옹, 카스트로, 박정희, 이명박, 노무현, 빌 게이츠, IBM 회장, 포브스 회장, 손흥민, 오타니 쇼헤이 전부 차남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차남이고, 의외로 조선 붕당정치의 쌍두 마차 '이황'과 '이이'가 차남이다. 그리고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도 차남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여인 열전' 타깃이 성종이다. 인헌왕후와 장희빈 (장옥정) 사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름의 두뇌 회전을 빨리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섹스 파트너의 "빠른 갈아타기"도 생존에 한몫했다. 성종은 "남자의 이상형은 처음 보는 여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팩트로 증명했다. 인헌왕후에서 첫눈에 반한 장희빈으로 갈아탔고, 장희빈에게 질리자 처음 보는 무수리로 갈아탄다. 궁에서 빨래같은 허드렛일했던 이 무수리가 낳은 아들이 '영조'다.


우리말도 K-'빨리 빨리' DNA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말 모음의 특징이 "작고 빠르다." 중국말은 "크고 느리다." '됐다'를 '되었다'라 하면 어색하다. '당최'라고 하지, '당초에'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말은 축약이 기본이다. 경상도 말은 더 심하다. '마!' '쫌!' 외마디로 의사소통이 된다. 그래서 윗동네 '이춘희' 같은 텔레비전 아나운서가 "~~ 하시었다!"라고 하는 느릿느릿 '엄근진' (엄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말투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살던 사람이 미국 와 살면 모든 게 느려 터진 거 같아 갑갑할 때가 많다. 운전면허국, 사회보장국 같은 공공기관에 가면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일처리 하는 공무원들을 보면 한대 쥐 박고 싶다. 간단한 도로공사도 한국 같으면 한 달 안에 끝낼 일을 일 년을 넘긴다. 미국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인 특유의 '빨리 빨리' 근성이 많이 누그러진다. 나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빨리 빨리'는 DNA 같은 거라 생존력이 끈질기다. 미국 본토 살다 하와이에 오니 또 모든 게 느리게 느껴졌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뭐 그리 급히 서두를 일이 없기는 하다. 주변사람들이 늘 내게 "캄 다운! 캄 다운! (calm down)"'을 주문했다.



어쩌다 한 번씩 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가면,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낀다. 한국인 특유의 분주함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공교롭게 총영사관의 위치도 빨리 (pali: 절벽을 뜻하는 하와이 말) 하이웨이다.


이제는 익숙해졌다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주방에서 가위 들고 요리하는 것에 기겁했다. 가위를 들고 설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위를 사용하면, 편하고 요리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눈에 도끼 들고 돼지갈비뼈를 내려치고, 가위로 고기를 자르는 한국인의 모습은 무섭기도 하고, 신박하기도 하다.


못 말리는 K-'빨리 빨리'의 DN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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