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언어 능력자' DNA (2)

훈민정음이 '치트키' (cheat key) 다!

by 박프로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광화문 광장이다. 한복을 빌려 입고, 연결된 경복궁에 들어갈 수 있고, 인사동 가게에서 선물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우리 역사상, '문과'와 '이과'의 통합 챔피언 세종대왕이 앉아있고, '무과'의 최고봉 이순신 장군이 칼차고 서있다. 특히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손에 들고 있어, 한글에 푹 빠진 외국인들의 'must-visit' 코스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언어의 발전 역사는 훈민정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훈민정음은 혁명이고, 치트키다. 훈민정음을 창안한 세종대왕은 언어 혁명가다. 전 세계 모든 언어학자가 인정한다. 한글 창제의 원리와 사용예시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는 전 세계 최고 언어학자들을 경악시켰다. 세상 어느 문자도 그 창제자와 원리, 해례를 알 수는 없다. 한글만큼 배우기가 세상 쉬운 글도 없다. 스마트한 사람은 아침 반나절에, 둔한 사람도 10일이면 족하다고 했다. 언어 천재 세종대왕은 60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가 훈민정음이기 때문이다. '해례본'은 일제강점기 시절 ' 간송 전형필' 선생이 기와집 10채 값을 주고, 경상북도 상주의 이 씨 가문으로부터 구입했다. 일제로부터 이 보물을 지키기 위해 베갯속에 숨겨왔다고 한다. 당시 일제는 조선말의 씨를 말리려 광분했다.



세종대왕만 언어 천재는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은 쓴 '정인지'도, 한자의 표준 발음을 훈민정음으로 적은 '동국정운'의 서문을 쓴 '신숙주'도 4개 국어 정도는 능통했던 언어 능력자였다. 아마도 중국말, 일본말, 몽골말, 만주말 이었을 것이다. 천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는다. 고대로부터 K-'언어 능력자' DNA을 물려받았기에 가능했다.



우리 조상들은 '언어 능력자 DNA'를 가지고 있다. 북방 유목민이었던 동이족은 한자를 만들어냈다. 동이족이 세운 나라, 은 (상) 나라의 갑골문이 한자의 원형이다. 갑골문은 금문, 소전, 해서를 거쳐 오늘날의 세련된 한자 모양으로 다듬어져 왔다. 말하자면, 우리 조상들은 동이족이 만든 갑골문이 원형인 한자를 가져와 관공서용 문서를 만들고, 학문을 익혔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글자로 표현하고 싶을 땐, 쉬운 한자 혹은 한자의 한 부분만 떼와서 적기도 했다. 역시 언어 능력자의 DNA 가 발현됐다. 신라의 '이두'와 '구결'이 그것이다. 이두는 음을 빌리거나, 뜻을 빌려 한자를 우리말 순서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 반면, 구결은 한문을 읽어나갈 때 직독 직해를 쉽게 하기 위해 단 '토'(吐)다. 물론 쉬운 한자로 토를 단다. "~은, ~는, ~을, ~를 ~하야, ~와, ~이다" 같은 조사가 토다. 꼰대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대꾸하면, 뚜껑이 열려 "토 달지 말라!"라고 하는데 그 토가 바로 구결이다.



우리 조상들은 언어능력자 맞다. 오지랖도 넓다. 신라의 구결이 바로 일본의 글자 '가타카나'의 원형이다. 그 옛날 일본도 지식층은 한자를 사용했고, 일본말을 글로 적기 위해 한자의 한 부문만 떼어내 가타카나를 만들었다. 8세 후반에서 9세기 전반사이에 가타카나가 완성되었다 한다. 당시 일본인은 한자를 '마나'(真名: 진짜글)라 우러러봤고, 일본글은 '가나'(假名: 가짜글, 빌린 글)로 개무시했다. 일본에 전해진 불교경전이나, 원효대사의 글에 신라의 구결이 새겨져 있다. 대나무(죽필)나 코끼리 이빨(상아)을 깎아 만든 각필로 꾹꾹 눌러져 있다.



우리 조상들의 K-'언어 능력자' DNA가 최고조로 발현된 어학 천재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음양 5행'의 동양철학에 바탕을 두고, 훈민정음 28자를 창안했다. 자음 17개, 모음 11개다. 자음은 발성기관을 본떠, 5행인 "목 화 토 금 수 (나무, 불, 흙, 쇠, 물)"에 맞춰 "아 설 순 치 후 (어금니, 혀, 입술, 이빨, 목구멍)" 글자들을 만들었다. 17개다. 매치가 기가 막힌다.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불과 물이다. 혀와 목구멍이다. 설음과 후음의 명줄이 제일 길다. 끝까지 살아남을 소리다. 중국어 발음과 일본어 발음에서는 달리 받침은 없다. 오직 혓소리 'ㄴ'과 목구멍소리 'ㅇ'이 받침 역할을 한다. "받침인 듯, 받침 아닌, 받침 같은 'ㄴ'과 'ㅇ'"이다. 모음은 '음양'에 따라 양 하늘 (•), 음 땅 (-), 음양의 조화 사람 (ㅣ)을 조합해 11개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조선의 사대부는 죄다 언어 능력자였다. 통역관 없이 중국말을 구사했다. 한자의 표준 발음을 훈민정음으로 표현한 '동국정운'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한자의 중국어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리를 설명했다. "발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땅이 중요하다." '동국정운' 이전에는 가령, '하늘'의 한자 발음이 조선의 남쪽에서는 '뎐', 중국과 가까운 북쪽에서는 '텐'이었다. 중국도 땅이 넓어 발음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중국도 '홍무 정운'을 펴내, 베이징 말을 중국 표준말로 삼았다. '티엔'이 표준발음이다. 사람이 아니라, 땅과 지역이 발음의 차이를 낳았던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으로 접근하면, 한자의 중국어 발음이 쉬워진다는 걸 알게 됐다. 조선의 표준 발음 '천'과 중국의 표준 발음 '티엔'을 비교하면서, 한자의 중국어 발음 방법을 터득했다. 자음은 "세고 거칠게", 모음은 "크고 늘어지게" 하면 중국어 표준 발음이 된다. 일단 훈민정음으로 조립된 음절의 받침 (종성)은 모두 탈락시킨다. 예외적으로, 받침 'ㅁ'은 'ㄴ'으로 바꾸고, 'ㅇ'은 그대로 둔다. 받침 'ㄴ'은 '이엔'으로 바꾼다. 간단하다. 너무 쉽다. 정인지는 '해례본'에서 "훈민정음만 있으면, 세상 어딜 가든 통한다"라고 했다. 훈민정음 28자로 세상에 못 낼 소리가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일본글로 낼 수 소리는 300 여개, 중국 한자로는 400 여개뿐이지만, 훈민정음 28자로는 1만 5천 여개에 육박하는 소리를 낼 있다.



불행히도, 훈민정음의 비극은 반포된 지 환갑도 되기 전에 찾아왔다. 연산군의 만행 때문이다. 연산군의 문란하고 엽기적인 성 행각과 패륜을 비난한 벽서의 글자가 훈민정음이었다. 격노한 연산군은 모든 훈민정음 관련 서적을 불태웠고, 서적 소지를 서로 고발하게 만들었다. 부모 형제, 이웃 가리지 않고, 부고지 죄를 물었다.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 연산군은 훈민정음이라는 치트키를 없앰으로써 조선 사대부들의 언어 능력을 감퇴시켰을 뿐 아니라, 몇 백 년간 후손들의 언어 능력을 죽이는 큰 죄를 저질렀다. 연산군도 K-'끝을 본다'의 DNA를 지독스레 발현시켰다. 중간이 없다!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 대왕의 신하였던 '홍양호'도 상소문에서 그걸 지적했다. "칼날이 얽힌 실타래를 풀듯" 중국어 학습을 쉽게 하는 치트키가 훈민정음이다. 홍양호는 역관을 대동해야 중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당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세종대왕은 문약한 왕이 아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집현전 서열 2위 '최만리'를 비롯한 반대 학자 7명을 의금부에 투옥시켰다. 카리스마 쩐다. 군기 잡기가 장난 아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에 민폐 끼치는 것도 싫어해 세 아들을 고생시켰다. 세자 (문종)와 수양대군, 안평대군에게 '운회'라는 한문 사전을 훈민정음으로 푸는 숙제를 냈다. 세자와 안평대군은 그렇다 해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걸 그토록 싫어했다는 수양대군은 또 뭔 죄로 그런 벌을 받는 것인지...



우리 조상들의 K-'언어 능력자' DNA는 연산군 따위가 훈민정음을 금지시킨다고 멈추질 게 아니다. 이번에는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다. 구 한말 개화기에 조선의 지식인은 영어 능통자였다. 주 조선 영국공사 외교관은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조선인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감히 넘보지 못한다"라고 조선인의 어학능력에 놀라워했다. 주 조선 일본영사관 외교관이 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한문을 직독직해 하는 능력을 그대로 영어 습득에 적용했다. 그리고 훈민정음이 또 한 번 치트키가 된다. 순경음 'ㅂㅇ'와 'ㅍㅇ'가 영어 발음 'v'와 'f'와 같다. 'ㄹㄹ'은 'r' 발음과 같다.


훈민정음의 글자들로 세상에 내지 못하는 발음이 없다. 그걸 후손들이 없앴다. 1만 5천 개의 소리를 내면 뭐 하냐고! 'f'와 'p'가 'ㅍ'으로, 'b'와 'v'가 'ㅂ'으로 발음되는데! 'r'와 'l'도 구분 못하고 'ㄹ'로 뭉뚱그리는데! 고단한 세상을 살다 보니 복잡한 거 싫어하게 되고, 중국어 발음의 필요성도 사라지게 된다. 연산군과 일제의 강압도 한몫했다. 4글자와 순경음, 'ㄹㄹ'도 "자연스레 또 강제로" 사라졌다. 반치음으로 중국어의 권설음 (혀를 말아 내는 소리)까지 해결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어 발음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발음까지 해결한 치트키가 훈민정음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가 24자로 최종 확정함으로써, 만능 치트키가 우리 손을 떠나게 된다. 훈민정음이라는 보물을 후손들이 차버렸다. 지키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영어 발음이 "존나 " 구리다.


대한민국의 어느 국문학자도, 국어 관련 어느 정부정책자도 훈민정음의 글자를 복원시키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나 같은 "사짜" 비교언어학자만 떠들 뿐이다. 세종대왕이 한마디 할 만하다.


"니네들 지금 모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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