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끝을 본다"의 DNA (1)

리틀 차이나 vs 리틀 아메리카

by 박프로


사십 대 중반 미국 땅에 오면서, 소박한 로망이 있었다. "나도 suv 같은 큰 차 한번 타보자! 골프도 시작하자!" 로망을 이뤘다. 로망을 이루다 못해 선을 넘었다. 오십 대 중반에 미국 골프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와이 골프 여행사에서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골프 자격증 획득이야 그다지 선 넘은 건 아니다. 그러나 suv 로망이 버스 운전으로 귀결된 건 확실히 오버다. 중간이 없다. 끝까지 간다.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독기가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외래 사상이나 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 그 사상이나 종교의 발원지보다 더 독한 모습으로 변형된다. 고려 때 불교가 갈 데까지 가버렸고, 조선의 유교는 병적으로 명분에 집착하는 수준으로 변질됐다. '화이 질서'와 '중화 사대주의'를 받아들이는 걸 넘어, 스스로를 '소중화'라 했다. '리틀 차이나'임을 자처했다. 중간이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사회주의가 이 땅에 들어왔고, 조선 독립에 기여한 몫이 있다. 그러나 역시 중간이 없다. 지금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조선식 사회주의를 윗동네에서 목격하고 있다. "우리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체제는 더 이상 그 체제가 아니다. 가령,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혼종, 하이브리드다. "한국식 민주주의 "도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조선식 사회주의 "도 사회주의를 포기했다. 대한민국도 지금 좌우 진영 싸움으로 끝을 보려 한다. 중간이 없다!



"널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해라 " (홍익인간)


반만년 전의 건국이념이 이처럼 간지 날 수는 없다. 한국인은 태초부터 명분이다. "폼생폼사, " 명분에 살고 명분에 죽는다.



조선의 밖 국제질서는 '화이 질서'였고, 중화 사대주의가 자연스레 따랐다. 중국 중심의 일극 체재였다. 조선은 '리틀 차이나'로 생존했다. 대한민국의 밖 국제질서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재다. 대한민국은 '리틀 아메리카'로 생존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자랑할만한 "성공 사례"다. 미국 체제를 받아들이고 가까이 지내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쇼 케이스"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건 "리틀 아메리카"이기 때문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 도전장을 낸 중국을 의식해서다. 중국과 가깝게 지내려는 나라와 그 지도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미국은 통제를 벗어난 2인자를 통제안으로 다시 가둠으로써 국제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 판단이 서면, 가차 없이 2인자 자리를 박탈한다. 2인자였던 소련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자 아예 해체시켜 버렸다. 경제적으로 2인자였던 일본이 선을 넘자 "잃어버린 30년"을 선물했다.


K-"끝을 본다"의 DNA가 가장 왕성하게 발현된 건 조선시대다. "리틀 차이나"의 명분 집착은 끝을 모른다. 현실적인 권력 욕망이 커질수록, 명분 포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당쟁 당사자들은 그게 포장인 줄 서로 잘 알면서도 집착했다.



"상복을 몇 년을 입느냐"는 명분싸움이 권력투쟁의 민낯을 포장한 게 '예송 논쟁'이다. 조선의 유교 성리학자답게 '주자가례'와 그 조선 버전 '경국대전'을 인용하면서 끝까지 달렸다. 역시 중간이 없다. 효종의 장례에 그 어미인 '장렬왕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을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여당이었던 서인은 효종은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었으니까 1년을, 야당이었던 남인은 그래도 적통이니까 3년을 주장했다. 장렬왕후 입장에서는 효종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떻냐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효종의 정통성을 건드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기는 쪽이 내편이다. 1년으로 결론 났고, 여당은 야당을 KO패 시켰다.


2차 여야 권력투쟁은 며느리 장례다. 장렬왕후 입장에서는 기도 안 찬다.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다. 역시 이기는 편이 내편이다. 서인은 9개월을, 남인은 1년을 고집했다. 서인이 끝까지 안 간 것은 자칫 효종의 정통성뿐만 아니라, 현직 왕으로 있는 그 아들 현종의 정통성까지 건드리는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역모로 몰릴 수도 있다. 1년으로 결론 났고, 남인은 판정승을 거뒀다. 잠시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서인의 힘이 워낙 셌기 때문이다.



그 후 조정은 서인의 한 갈래인 '노론'이 장기 집권한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은 조선 최고의 중화 사대주의자다. '이황'과 '이이'로 시작한 조선의 당쟁은 안동 김 씨의 세도정치로 막을 내린다. 마치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소스를 부어 먹느냐"로 쌈박질하다가, 찍어 먹든, 부어 먹든 탕수육은 안동 반점에서 시키는 걸로 결론난 셈이다.



대한민국의 화폐는 "이 씨 화수회 모임"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천 원짜리 이황, 5천 원짜리 이이, 만 원짜리 이도(세종대왕), 5만 원짜리 Mrs (신사임당의 남편 이름이 이원수), 500원짜리 지폐에서 100원짜리 동전으로 강등된 이순신 장군까지 전부 이 씨다. 이순신을 제외하면, 전부 서울대 총동창회 모임이다. 이황, 이이, 이도 모두 조선시대 버전의 서울대 '성균관' 출신이다. 미시즈 리는 서울대 학부모다.



'이이'와 '이황'은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태두다. 둘 다 유교 성리학자다. 이황은 동인의 큰 형님이다. 동인은 남인, 북인으로, 북인은 다시 소북, 대북으로 세포분열했다. 명종 때 잠시 벼슬을 하다, 고향 안동으로 낙향해 패거리를 육성했다. 이이는 서인의 따거로 추대된 인물이다. 서인은 소론, 노론으로, 노론은 다시 시파, 벽파로 세포분열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누가 더 중화 사대주의의 정통이냐를 두고 다퉜다. 이이나 이황이나 '단군 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숭배하는 중화 사대주의 지식인이었다.


유교의 명분에 집착, 끝을 보려는 K- DNA로 인해 당시 조선은 국제 정세 파악에 실패했다. 선조와 인조가 그 대표적인 지도자다. 청나라와 썸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썸을 탔으면, '병자호란'도 없었을 것이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 청나라는 중국 한족의 명나라를 치기 위해, 지독한 유교 나라로서 명나라를 받들고 있는 조선을 회유했다. 조선의 발목을 잡아두기 위해 핏줄까지 거론한다.



이번에도 효종의 아버지 인조가 문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다가, 삼전도에서 굴육적인 패배의 의례를 받쳤다. 이마를 땅바닥에 짓이겼다. 청나라 장수가 일갈한다. "우리는 같은 동족인데, 왜 명나라만 섬기고, 우릴 오랑캐 취급 하느냐!" 청나라가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고 회유했을 때, 받아들였으면 병자호란도 없고, 썸 타는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니거인 듯 니거 아닌 니거 같은 나"라고만 성의를 보여 화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임진왜란 때는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왕 선조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조선은 부모의 나라다. 왜 우리의 도움을 거절하느냐!" 같은 동이족의 후손인데, 중화 사대주의에 맹목적인 조선이 안타깝고 미웠을 것이다. 사실 중국 한족이 통일 국가를 이룬 것은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가 전부다. 한나라 400여 년, 송나라 300여 년, 명나라 300여 년, 도합 1,000년이 전부다. 세상의 기운이 청나라로 모일 때, 조선은 중화 사대주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 친중파의 뿌리는 조선시대 붕당정치 패거리 '노론'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시각도 있다. "친명 반청"의 '소중화'가 송시열을 필두로 하는 노론의 대의명분이다. 노론의 소중화는 구한말 이항로, 최익현의 "친중 위정척사론"으로 이어진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천명한다. 대한민국의 친중파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토를 못 다는 이유다. 이들에게 '리틀 차이나'는 롤 모델이다. '리틀 아메리카'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끝까지 달린다. 진영 싸움에 올인한다. K- "끝을 본다" 유전자가 지독하다. 중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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