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흥의 DNA (2)

갑골문 '흥'과 '케데헌'의 가무

by 박프로


공개된 지 반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감상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무려 올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화제성이 워낙 세계 톱클라스라 제대로 된 화질과 음질로 보고 싶었다. 엘지 올레드 77인치 화질과 보스 홈시어터 음질로 감상했다. 이 나이에 트로트가 제격인데, 뭔 케이팝 인가 싶다. 사실 케이팝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가창력보다는 춤과 몸으로, 때로는 얼굴로 승부를 보려는 듯이 보여, 별로였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만 보더라도 유치 찬란하다. 초성 ㅂ, ㅌ, ㅅ를 BTS로 하다니 단순하다 못해 기괴하다. 하기야 걸그룹의 시조새라 불리는 S.E.S도 멤버인 바다, 유진, 슈의 초성을 따 이름 지었다. 왜 바다인데 B가 아니고, S냐고? 바다가 Sea라서 그랬단다. 유진은 영어로 Eugene이니까 이상 무다.


조카딸이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나와 케이팝의 연관성이 1도 없다. 대학 전공과 전혀 상관없이 대중문화의 심장부에 있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다. 그나마 내가 "케이팝 퇴마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조카딸 덕분이다.



어릴 때 외국으로 나가 살거나, 아예 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동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해진다. 그래서 살짝 국뽕의 MSG가 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 40대 중반에 미국 땅에 온 나도 나이가 드니, 한국인의 뿌리와 유전자를 찾는 여정을 따라 이런 글을 연재하고 있다. 케데헌을 감독한 매기 강(강민지)도 그렇다. 40대 중반의 매기 강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무당, 사인검, 저승사자, 외눈 도깨비, 범, 까치, 떼창 등 외국인 보기에 생경할 수 있는 한국적인 요소를 다 담아냈다. 케이팝 걸그룹을 무당과 연결시킨 발상이 독창적이다. 신명 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무당은 한국인의 흥을 제대로 표현한다. 걸그룹 '헌트릭스'에 열광하는 팬들도 흥이 넘친다. '흥생흥사' 흥에 살고 흥에 죽는다. 한국계 캐나다 사람 '매기 강' 감독의 "감독 입뽕작" 한편이 세상을 '흥생흥사'로 들쑤시고 있다.



'흥'의 태곳적 의미는 "발기하다"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흥'을 "일으키다, 일어나다, 같이 들다"로 점잖게 뜻풀이를 하지만, 원뜻은 "'남자 소중이'가 발기하다"이다. 갑골문 '흥'을 보면 알 수 있다. 해서 '흥'의 같을 '동'은 갑골문 '동'을 보면 원뜻을 알 수 있다. 가랑이 사이에 구멍이 있고, 구멍 밑에 ㅂ모양의 구멍이 또 있다. 위 구멍은 여자 항문이고, 아래 구멍은 '여자 소중이'다. 같을 '동'은 "윗구멍에서 싸나 아래 구멍에서 싸나 싸는 건 같다, 매일반이다"라는 원뜻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 '흥'은 남자손과 여자손이 위아래에 있고, 그 안에 여자의 구멍 2개가 있다. 남녀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모양새다.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조 고구려전'을 보면, "남녀가 무리 지어 며칠 밤을 새워 춤추고 노래한다"라고 나와있다. 춤과 노래 (떼창)가 끝난 뒤의 순서로 마음 맞는 남녀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게 고대의 풍속이고, 그게 갑골문 '흥'에 잘 그려져 있다. 신장 위구르에서 발견된 고대 암벽화에는 남녀 무리가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있다. 요즘말로는 '그룹 섹스' (순우리말로는 '떼씹'이다. '떼창'뒤의 자연스러운 순서다)... '남자 소중이'는 예외 없이 발기된 상태다. 어떤 남자는 엉덩이 쪽으로도 발기되어 있다. '애널' (anal, 항문 성교)을 의미한다. 사랑의 절정에 달하면, "어느 구멍이나 매일반이다." 갑골문 '흥'에 여자 항문이 그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케데헌' 덕분에 요즘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베스트셀러는 호작 (범과 까치) 굿즈다. 우리 전래 민화의 단골손님이 범과 까치 세트다. 참 귀엽고, 친구 같은 범 이미지다. 맹수 이미지가 아니다. 기껏 무서워봤자 "떡하나 주면 안 잡아 머~억지!" 정도다. 떡에 만족할 줄 아는 순둥이 호랑이다.



케데헌에서 범은 루미와 진우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지만, 원래 범은 신성한 존재이기도 했다. 별칭이 많다. 산군, 산군주, 산신, 산신령, 그분, 영감님 등... 불화나 무속화에는 진짜배기 산신령을 보호하는 범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케데헌에서는 아이돌 걸그룹이 현대 버전 무당이다. 조선시대의 무당이 걸그룹으로 환생했다. 화려한 칼춤도 추고, 화살도 쏜다. '퇴마 요정' (헌트릭스)의 루미는 '사인검' (인해,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들었고, 악귀를 물리치는 '척사' 용도였다) 미라는 '창'을, 조이는 '표창'을 사용해 악령을 물리친다.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무기다. 악령이 때로는 좀비 모습으로도 나온다. 강민지 감독이 넷플릭스의 화제작 드라마 '킹덤'과 러블리 마동석의 영화 '부산행'에서 영감을 얻은듯하다.


루미의 대모로 나오는 '셀린'의 실제 모델은 S.E.S의 바다라 한다. 원조, 1세대, 시조새 아이돌 걸그룹의 메인 보컬 담당이다. 바다는 40대가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고구려의 춤은 힘이 넘쳤다. 조선시대 무당의 춤은 그걸 이어받았다. 그 DNA가 '퇴마 요정'에도 이어진다. 갑골문 시대의 '흥'이라는 그룹 섹스가 후대에 춤과 노래로, 떼창으로 승화된 셈이다.



우리 전래 민화에서는 까치가 호랑이와 한 세트로 등장한다. 까치와 까마귀는 "까만 새"란 뜻이고 같은 과다. 다만 까치는 흰색 브릿지로 머리털 대신, 몸통털에 포인트를 줬다. 대한민국에서는 까치가 길조로, 까마귀는 흉조로 여겨지지만, 원래 까마귀는 역사적으로 신성한 새다. 다리가 3개인 까마귀 '삼족오'는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메신저였다. 케데헌에서는 까치가 범과 함께 다니는 메신저다. 까마귀 대신 까치로 살짝 비틀어 표현했다.



케데헌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미라는 헌트릭스가 표지 모델로 나오는 잡지를 보고 있다. 타임지가, 무려 타임지가 이걸 그대로 표지 사진으로 실었다. 케데헌이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안된다.



외국인이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전래 민화는 "담배 피우는 호랑이"다.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그림은 호랑이가 "그분, 영감님"으로 불렸기 때문에 한국인이 보기엔 자연스럽다. 케데헌에서는 메신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호랑이다.



케데헌에서 나에게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즈음에 나온다. 그동안 달콤한 모습만 보여줬던 아이돌 보이 그룹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자 보이즈가 라이언이 아닌, 저승사자임을 커밍아웃한다. 저승사자임에도 간지 난다. "저승사자가 왜 저리 멋있는 건데!" K-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저승사자도 "얼굴 깡패" 이동욱이다.


저승사자는 원래 9급 공무원이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들어 사람을 데리러 간다. 악령이 아니다. "까라면 까는" 하위직 공무원이다. 그러나 사자 보이즈는 악령으로 나온다. 귀마의 명을 받드는 악령이다. 여담이지만, 원래 저승사자의 드레스 코드는 장군복이고, 3인 1조로 다닌다. 그러다 1970년대 KBS '전설의 고향' 피디가 제작비를 아끼려 갓과 검은 옷 드레스 코드를 창안했다고 한다. 인건비 줄이려 3인 1조를 "독고다이"로 변형시켰다.


저승사자 5인조의 리더인 진우는 7급 공무원이다. 단연 돋보인다. 루미처럼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진우는 루미를 구하고자 자신을 희생한다. 이로써 진우는 케데헌을 보고 있는 온 세상 여자 아이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진우는 그들의 영원한 첫사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장면이 K-아줌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햇빛을 가려주는 모자 창이 본인 얼굴보다 크다. "태양을 피하는 법"에 진심이다. '헌트릭스'의 선배 '퇴마 요정'이었다는 네티즌의 팩트 체크도 있다. 40대의 S.E.S 멤버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케데헌은 역사 고증과 현실 고증이 잘 되어있다. 이 만화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의 한국계 외국인인데도 역사 학자와 민속 학자가 감탄할 정도다. 강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하는 문화 충격을 선사했다.


K-흥의 DNA는 동이족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케데헌도 퇴마 스토리지만, 그 내용은 K-흥으로 가득 차 있다. 난 케데헌을 온전히 보기 위해, 그 흥을 캐치하기 위해 넷플릭스를 구독했다. 월 $7.99로... 난 평생 인터넷에서 돈 주고 뭘 구독해 본 적이 없다. 인터넷은 공짜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바꾼 게 케데헌이고, K-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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