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초 씹는 한국인
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별로다.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 보는 나 자신이 한심할 거 같아서다. 내가 '흑백 요리사 시즌 2'를 본 건 순전히 조카딸의 강추 때문이다. 하와이에 신혼여행온 조카딸이 그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옥동식'에도 가보라고 권했다. '옥동자' (얼굴 하나로 사람들을 웃긴 옛 개그맨의 이름)'옥떨메' (못생긴 사람을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 했다. 이런 단어들을 아는 사람은 바로 연식이 나온다!)는 들어봤어도 '옥동식'은 뭔가 싶었다. 주방장 이름이 '옥동식' 이란다.
'옥동식'이라는 식당은 '돼지 국밥' 하나로 뉴욕의 미식가들을 사로잡았다. 번호 뽑고 기다리는 대기자가 하루 천명이 넘을 정도였다. '돼지 국밥' 하면 부산이다. 부산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난 돼지 국밥이 영 당기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부산 해운대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돼지 국밥을 먹고 식중독 비슷한 것에 걸려 생고생한 게 트라우마가 된듯하다. 하와이에도 지점이 생겼으니, 그런 돼지 국밥을 꼭 먹어보란다. 돼지 국밥의 클래스가 장난이 아니란다. 조만간에 함 먹어보긴 봐야겠다.
옥동식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흑요'를 봤다. 솔직히 말하면, 넷플릭스 월 구독료 $7.99의 뽕을 뽑고 싶어 봤다. 시작부터 불편했다. 백종원이 진행자 겸 심사위원으로 등장했다. 한국인의 심사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똥배짱이 거슬린다. '흑요'는 '오징어 게임'의 요리 버전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만하다.
'흑요'에서 내 눈길을 끈 건 따로 있다. '절 밥'과 '나물 주안상'이다. 사찰 음식의 명인 '선재 스님'의 '잣국수'는 전 세계 채식주의자가 열광할 만하다. 젊은 여성 참가자의 나물 주안상은 평범하면서도 놀랍다. 어찌 하다못해 돼지 껍데기라도 하나 없이, 순 나물로만 술 한잔 할 수 있게 상을 차릴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기야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돈이 없어 짬뽕 국물을 술안주 삼았다.
사찰 음식과 일반 풀떼기 음식은 채식이라는 점에서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사찰 음식을 만드는 것은 수행의 일부다. '발우 공양' (식사의 불교 용어) 이후에도 수행은 계속된다. 그래서 몸을 후끈 달아 올리는 재료는 쓰지 않는다. 마늘, 파, 양파, 달래, 부추는 금지 재료다. 특히 부추는 요주의 식재료다. 부추는 피를 맑게 하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배꼽 아래도 피가 너무 잘 돈다. 부추 먹고 수행한다는 거 자체가 남자에게는 고행길이다.
사찰 음식은 힘을 가라앉힌다. 반대로 일반 음식은 힘을 내기 위해 먹는다. 고기반찬이 있으면 좋고, 없더라도 마늘, 양파, 파, 달래, 부추를 양껏 먹고 힘을 내야 하루를 버텨낸다. 두부의 단백질과 고기의 단백질은 차원이 다르다. "사찰 음식의 최고봉" 정관 스님도 인정했다. 사찰 음식만 먹어서는 기운이 딸린다고...기운 딸리라고 먹는 음식이 사찰 음식이다! 유일한 예외가 표고버섯 조림이라 한다. K-발효 소스의 베이스 '간장'을 바르고 "챔기름"에 달달 볶은 표고버섯은 가끔 힘이 필요할 때 먹는 음식이다. 설탕 같은 인공재료는 쓰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설탕 만능주의자 " 백종원 따위와는 비교 불가다. 세프도 아닌 외식업자가 기라성 같은 세프들의 요리를 심사한다는 게 심사 뒤틀리는 일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산나물 반찬을 만들어 먹는 데 기겁한다. 독초를 씹고 있다고... 고사리, 두릅, 칡뿌리, 명이, 각종 버섯... 한국인은 독초를 나물로 변하게 하는 매직을 부린다. 끓는 물에 데치면 독이 빠진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다. 이게 다 먹을 게 없어, 막다른 골목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가슴 아픈 지혜다.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기획 사기에 걸려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단군이 세운 조선은 척박한 땅의 만주 지역과 산이 80%에 육박하는 한반도다. 먹을 게 없다. 조금 있는 평지에 벼를 심고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많고, 그나마 영양분을 갖춘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에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과 바다를 헤매고 다녔다. 산에 나는 온갖 풀, 바다의 해초와 해산물을 끌어모아 먹거리로 만들었다. 때로는 식중독으로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독성을 제거하는 지혜가 생겼던 것이다.
일본을 창조했다는 '이자나기' 신 이야말로 부동산 기획 사기에 제대로 걸렸다. 단군 할아버지도 사기에 걸린 듯했지만, 500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단군 할아버지는 옳았다! ( 이 연재물들이 모여 책으로 나오면, 제목으로 뽑을 예정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국토의 80% 화강암 산에서 정수된 물은 깨끗한 K-'동안'의 미인, 훈남을 배출했다. 먹을 게 없어 독초를 나물로 만들어 먹었던 고단함이 K-'푸드'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일본은 열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면서, 한때 세계 제2위 경제 강국을 이뤘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30년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진이 일상인 자연환경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기획 사기가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여담으로, '이자나기'는 여동생 '이자나미'와 결혼했다. 근친혼의 뿌리가 창조 신화까지 올라간다. 일본인의 못생긴 얼굴은 근친혼의 영향이 크다.
대한민국은 지금 팔자에도 없는 "문화 제국주의" 소릴 듣는다. K-문화가 세계 곳곳을 정복 (conquer) 하고 있다고 난리다. "미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제국주의"는 들어봤어도 "한류 제국주의"는 생소하다. 서양 열강들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중2 사춘기" 제국주의였다면, 중국은 이제 와서 나이 "40대의 사추기" 중화 제국주의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 뽕에 취해 몸을 못 가누던 청나라 말기의 치욕을 "사추기 제국주의"로 씻고 싶어서다.
K-'먹성'의 DNA는 먹을 게 없어 산과 바닷가를 헤매던 우리 선조들의 고단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뭐든 먹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먹성이 된 것이다. 미식을 위해 박쥐 요리와 원숭이 두개골 요리를 만드는 중국인과 차원이 다르다. 중국인은 "책상다리 빼놓고는" 모든 걸 식재료로 삼아 미식을 추구한다. 일본인도 먹거리에 장인 정신을 불어넣고, 예술로 승화시키려 애쓴다. 그래서 한때 중국 음식과 일본 음식을 최고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게 없어 만들어 먹었던 게 K-푸드로 거듭나고 있다. 골뱅이, 참게, 미더덕, 멍게, 미역, 김, 나물, 사찰 음식... 킹크랩과 랍스터만 알던 서양인이 참게 튀김, 꽃게탕을 즐긴다. "바다 쓰레기" 김에 열광한다. 정관 스님의 "절 밥"에 미슐랭 3 스타 세계 최고의 세프들이 존경을 표한다.
독초 씹는 한국인... 무서운 한국인이다. 카리스마 쩌는 한국인이다. 간지 나는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