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 (JTBC, 2022)
드디어 <나의 해방 일지>가 끝났다.
마지막 회를 한 회 앞둔 15화에서 “나 너 진짜 좋아했다” 과거형으로 말하고, “우리 그렇게 저물자”라던 어딘가 불안한 구 씨의 모습에 세드를 점치는 와중에 나는 <나의 아저씨>의 엔딩을 떠올리며 이들이 저마다의 해방에 다다를 해피엔딩을 믿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은 온전히 보상받았다.
마지막 회가 끝난 직후 실시간 반응에선 혼란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어떤 갈등도 명확히, 똑 부러지게 해소된 것 없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 열린 결말은 K-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에겐 익숙한, 친절한 엔딩은 아니다. 물론 구 씨가 편의점서 산 술 병을 길거리 노숙자에게 주고 간 장면에서 그가 술을 끊을 거란 암시를 주었지만 다시 마시게 될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은 밝은 태양 아래였다. 마치 <나의 아저씨>에서 어두운 밤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지은이 동훈과 한창 낮인 점심시간에, 그것도 사람 많은 도심 한복판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인 것처럼, 구 씨와 미정도 태양 아래,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구 씨는 15년간 해는 구경할 수 없는 밤에, 달빛마저 볼 수 없는 지하에서 일했다. 미정과도 주로 밤에, 논길을 걸었다. 재회 한 뒤에도 두 사람은 밤에 시간을 보냈다. 구 씨가 밤에 일했고, 미정도 퇴근하고 난 뒤면 저녁이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구 씨와 미정이 서로를 추앙하던 산포에선 내내 밝았다. 늦여름의 해가 늦게까지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고, 태양 아래 놓인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걸음으로 함께 걸었다. 해가 떠있던 산포에서 구 씨는 백 사장을 만나고서도 길을 잃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구 씨가 다시 클럽을 찾아가 백 사장에게 엄포를 놓았을 때 자신은 지금 “쉬는 중”이라고 말했던 게 아닐까. 땅 아래가 아닌 땅을 딛고 서서, 해를 받으며 일하던 산포에서의 시간은 그에 쉼이었다. 다시 클럽으로, 지하로 돌아갔지만 미정과 재회한 뒤 구 씨의 시간에 낮이 생겼다. 천천히 밝음이 떠올랐고 “마음에 사랑 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 사람이 잘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고, 바닥을 긴다 해도 쪽팔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인간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라는 미정의 추앙은 구 씨가 곁을 떠난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그를 축복했다.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적어도 성역에 둔 그는 건드리지 않았다. 온전히 사랑만 주는 훈련이 그녀 안에 있던 미움을 몰아냈다. 천천히 사라진 미움도 사실 그 사람이 달라져서가 아니었기에 어떻게 보면 이 또한 미정이 보낸 일종의 추앙이다. 여전히 전 남자 친구는 돈을 다 갚지 않은 개새끼였지만, 우연히 만난 그가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을 때 (그때 그냥 두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 세상에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미정은 나서서 그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아침에 그저 눈을 떴을 뿐인데, 화가 나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환대했다. 그 직후 미정의 표정이 기억난다. 어딘가 후련한, 해방된 듯 한 옅은 미소.
인간이 싫다던 구 씨도, 미정도 인간이 싫었던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구 씨는 온갖 불행을 끌어안고 살았다. 아침마다 머릿속으로 찾아오는 산 사람부터 죽은 사람까지 모두를 미워하고 욕하고 죽이던 자신을 그는 싫어했다. 자기 말에 죽은, 같이 살던 여자를 생각하며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걸 했을 지도 모른다. 나한테 문제를 찾는 게 괴로워 다 개새끼로 만들던, 자신의 형편없음을 미정은 미워했을 테고.
하지만 무엇에 상관없이 자신을 응원하는 구 씨의 추앙과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설사 술에 취해있고 얼굴에 상처가 나서 돌아와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쁘다고 말해주는 미정의 추앙을 ‘만땅’ 받은 이들은 그렇게 미웠던 자기 자신도 환대하기에 이른다.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해방은 거기서 시작되는 거라고 미정은 말했다.
“아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게 사랑밖에 없어”
미움을 몰아낸 두 사람에겐 이제 사랑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에 사랑밖에 없으니 느낄게 사랑 밖에 없고, 자기 자신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이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또 어디 있을까.
일전에 <나의 해방 일지>에 대한 초반 리뷰를 쓰면서 말미에 “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토, 일을 기다린다. 마침내 나도 그 해방에 닿길 바라는 심정으로”라고 남겼다. 이곳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내게 남긴 말이 일상에 스며들어 수시로 떠오른다. 갑자기 눈앞에 온 기회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을 때, 그러면 내 것이 아니라던 창희 말이 떠오르는 건 안타까웠지만, 실제로 그 기회가 내게 오지 않았으니 역시 그의 말이 맞다며 청희 말을 가슴에 품었고, ‘사과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사과하는 사람의 품격을 생각하게 하던 태훈과 기정의 대화는 기정의 고백을 거절했던 순간 태훈에게서 느낀 인간의 품격과 이어져, 내겐 어떤 품격이 있나 말로 허비하고 있는 나의 인간다움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말 많던 창희가 혀 끝까지 나온 말을 삼킬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며, 자신에게 반하던 장면에선 성숙함이 느껴졌고 나도 창희에게 반했다. 그렇게 창희는 자신을 사랑하며 죽음을 환대하는 사람이 되었고, 태훈을 위해 남자가 되겠다던 받는 여자 기정은 이미 추앙 중이었다.
사실 한 달 넘게 누군가를 무척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창희가 말하지 않았는가. 세상 다 애정 법이라고. 나는 그 말로 미워하는 내 마음에 당위성을 부여했는데 마지막 회를 보고 나니, 영 틀렸다. 그러니 결국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소리였다. 아니었음 애정 법이 아니라 미움 법, 증오 법이라고 표현했어야지 맞는 거니까. 나도 나를 참 사랑하지 못하는 한 사람인데 내 미움의 뿌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음을. 이렇게 나의 문제점도 짚어냈다.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 같지 않고, 도로 아미타불 되는 순간이 나를 또 다시 미워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때가 오면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자' 이들의 걸음걸이를 생각하련다. 5초 7초짜리 설레는 순간을 끌어모아 환대하는 이들의 성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대사를 올리는 인스타그램엔 아직 10회 대사를 업로드 중에 있다. 천천히 대사를 곱씹으며 나는 나를 되짚어 볼 것이다. 그리고 쓰는 모든 글은 ‘나의 해방 일지’가 되겠지. 기정과 창희의 해방도 언제 따로 적고 싶다. 그게 아니어도 한동안, 아니 꽤 오래 이들이 말하던 모든 대화는 자주 나의 글에 인용될게 보인다.
추앙하고 싶던 해방의 세계는 환대로 끝났다. 추앙, 해방, 환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오랜만에 지독히 현실적인 엔딩을 보았는데도 씁쓸하다는 감정같은건없다. 울림이 크다. 가슴이 벅차다. 느낄게 사랑밖에 없다.
환대하려 한다, 추앙하는 해방의 삶을. 나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