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 ( SBS,2014)
오랜만에 [당신이 옳다(정혜선 작가, 해냄 출판사)]를 꺼내 읽었다. 책이 막 출간되었을 때 독서모임에서 읽었으니까 이 책을 읽은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나란 사람은 참 형편없었다. 이렇게 좁고 좁은 시야로 세상을, 사람을 보고 있었다니. 부끄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다시 꺼낸 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SBS, 2014)>를 재주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 괜찮아,라고 시작하는 드라마와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옳다고 말하는 책.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부터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을 건네는 위안이 느껴진다. 책을 쓴 정혜선 작가와 드라마 속 주인공인 지해수(공효진 분) 둘 다 정신과 의사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두 작품 다 세상에 선보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통찰력 있는 메시지가 빛을 바라지 않고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점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공통점이다.
사실 <괜찮아, 사랑이야>는 해마다 다시 보는 드라마였는데 생각해보니 몇 해를 건네 뛰었더라. OTT 플랫폼의 범람으로 쏟아지는 신작에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이번 재주행도 노희경 작가님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tvN, 2022)> 을 보고 있어서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비롯 <그들이 사는 세상(KBS,20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tvN, 2017)>, <디어 마이 프렌즈(tvN, 2016)> 등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데 정평이 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을 향한 흘러넘치는 애정이 느껴진다.
특히 작가의 작품 속에는 여느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세대와 장애나 편견을 지닌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농인 별이(이소별 분), 다운증후군 영희(정은혜 분)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이야기를 부수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중심에 두고 풀어간다. 우리 사회가 평소 시선을 두지 않는 환경이나 인물이 처한 상황을 어떠한 편견이나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에 노희경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은 볼 때마다 감탄과 반성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래서 생각났다. 세상이 고집하는 선입견과 편견을 부수며 너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SBS, 2014)>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주인공의 설정에서부터 편견 하나를 부수면서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는 불안장애와 관계 기피증을 앓고 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정신과 의사라. 나는 어렸을 때 병을 고치는 의사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믿음은 뜯어보면 일종의 편견이다. 지해수의 선배이자 그녀의 주치의인 정신과 의사 조동민(성동일 분)은 나처럼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동료 의사에게 “외과의사라고 해서 암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냐”라고 말한다. ‘엄마는 엄마다워야 해’ 라던가 ‘여자(또는 남자)는 여자(남자)다워야 한다’는 식으로 어떠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가두는 것이야 말로 편견이 작용한 폭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무서운 생각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또 하나의 편견을 들고 나온다. “나는 절대 정신증 같은 건 걸리지 않을 거야”, “나는 저들과 달라” 하는 생각.
큰 스트레스를 연타로 세 번만 맞으면 누구나 정신증에 걸릴 수 있다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 내게 불안, 초조증이 있다는 걸 인식했을 때 큰 병에 걸린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었다.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와 지독한 성실성이 만나 나쁜 시너지를 만들어 기저에 불안이 쌓이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해지자 호흡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는 과호흡 증상을 가져왔다. 극심한 증상은 회사를 퇴사하고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이따금 불안이 감지되는 순간 심장 박동이 어긋 뛰는 걸 느낀다.
언젠가 친구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증에 대해 말했을 때 친구는 “가벼운 감기 같은 거야.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도 이 드라마를 봤던 걸까? 그건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진 옅은 불안증에 대해선 들을 수 있었다. 몰랐다. 내 곁에 약의 도움을 받아 긴 밤을 넘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다르게 생각하면 이상하다, 별나다, 심지어 미친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이나 손가락질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말하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같은 이유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냥, 감기 같은 거였다. 작품은 정신증을 마음의 감기로 비유하면서 살면서 감기 한번 안 걸려본 사람이 없듯, 누구나 마음이 감기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세게 감기를 앓기도 하지만, 대게는 가볍게 지나간다. 인간의 90%가 간단한 신경증을 가지고 산다던 지해수의 대사는 마음의 감기가 지독한 녀석만 있지 않음을 잘 설명해 준다. 한번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또 감기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마음도 자주 힘을 잃을 수 있고 그땐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잘 먹고 잘 쉬는 게 도움이 된다. 이 비유는 내 안에 두텁게 쌓여 있던 정신증에 대한 편견을 깨 나갔다.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는 자만은 삼가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환자라는 메시지를 작가는 장재열(조인성 분)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또박또박 분명하게 전하면서,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 환자다.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갖는 걸, 우리는 그가 그 사람이 나와 다르니까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오류죠.”
정혜선 작가는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구나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라”라고 말한다. 나의 불안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어 나는 아픔을 말할 수 있었고,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불안의 전조가 느껴지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방법도 마련해 둘 수 있었다. 정혜선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그 친구로 인해 기꺼이 그의 세계에 수용되었다. 나와 다르면 배척하는 세상 속에서 선 밖으로 밀쳐지지 않고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안전한 지대가 생긴 것이다.
재열과 해수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감기를 기꺼이 수용하고 이해한다. 재열에게 선과 열에 대한 강박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화장실에서만 잠을 잘 수 있는 강박으로 공용화장실 바닥에서 잠들어 있던 모습은 정신과 의사 해수에게도 놀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불안을 알고 있는 해수는 집에 가자며 그를 깨운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아는 어떤 강박증 환자는 개 집에서 자.” 담담한 해수의 이해를 받은 재열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날 해수는 재열과 입을 맞췄다. 스킨십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나던 해수가 처음으로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고 그와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재열이 자신의 아픔을 알고, 이해하고 있음이 해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드라마는 정혜선 작가가 말하는 공감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공감이 어떻게 회복을 가져오는지 해수와 재열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그날 처음 주고받은 이해와 공감으로 두 사람이 가진 마음의 감기가 단번에 나은 건 아니다. 트라우마는 밤새 나무에 묶여 있던 낙타처럼 밝은 해가 떠도 쉬이 도망가지 않고 메어있는 그곳에 그대로 있는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분노의 지옥’에서 한 발짝 멀어진 건 분명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이들은 아름다운 세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어려운 영역의 일이지만,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배워가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고 있다. 아픔을 고백하면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보다 들어 주려한다. ‘사연을 알게 되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아픔’. 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작이자 이해로 가는 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공감이 만드는 회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지금에서야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서로를 향한 이해, 공감, 이 삶의 자세에 대해 드라마는 무려 8년 전에 이야기를 했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사회 분위기가 변하는데 도움을 줬을까? 적어도 내 세상은 영향을 받았다. 어리석고 좁은 시야를 가진 나는 여러 번 이 작품을 다시 보았다. 볼 때마다 어떠한 틀,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불리는 정형화된 틀에 나도 타인도 가두지 말자고 되뇌었다. 안타깝게도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일이 허다하지만, 작품은 그런 나도 괜찮다고, 틀린 게 아니라고,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이러니 이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감기에 걸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린 서로를 충분히,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 아름다운 세계로 우리 한 발 더 가까워져 보자.
이해와 공감을 들려주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하다.
괜찮아, 사랑이야 16부작 방송사 SBS
작가 노희경 연출 김규태
조인성, 공효진, 성동일, 이광수, 진경, 이성경 등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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