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tvN, 2022)>
드라마를 보면서 짜증 난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할 줄이야.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 수록 내 두 손이 휴지를 꼭 쥐고 놓지 못하게 했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짜증 나, 짜증 나’ 이 말만 계속 반복해 나왔다. 맛있는 걸 먹어도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난다고 말하는, 비루한 어휘력을 가진 자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응이었다.
20부작 옴니버스 형태로 이루어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 2022)>는 ‘사회성 짙은 휴머니즘과 훈훈한 로맨스 드라마를 집필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다(소개글은 나무 위키 인용).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에서도 ‘노희경 작가’만의 색이 제대로 묻어 있었고,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가의 글을 보며 있는 힘껏 '짜증'이 나고 말았다.
노희경 작가가 아니고서야 이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을까? 고두심, 김혜자,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등 출연 배우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제작비를 걱정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선 굵은, 핫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리고 이들은 6살 은기(기소유 분)부터 일흔 중반의 옥동(김혜자 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이 되어 세대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진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소개에서도 밝혔지만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인간애를 담아 들려주면서도 대중성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작인 <괜찮아 사랑이야(SBS < 2014)>에서는 정신병을 ‘마음의 감기’에 비유하며 두려워하거나 나는 겪지 않을 일이라는 듯 선을 긋고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고, 경찰을 감정노동자로 본 <라이브(tvN, 2018) 등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는 고정된 생각을 달리 보게 하는 시선이 담겨있다. 자칫 무거운, 쉽지 않은 메시지를 작가는 노련하게 훈훈한 로맨스에 녹여 부담감 없이 전한다. 그렇게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측면을 보게 함으로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기다려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노희경만의 필체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지점을 만든다. 전개 방식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현(배현성 분)과 영주(노윤서 분)를 통해 보여준 10대의 임신과 출산은 숨기고 덮으면서 그들만의 문제로 삼을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고, 영옥(한지민 분)과 영희(정은혜 분) 에피소드에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알려준다. 식당에서 장애가 있는 영희를 놀리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은 부모와 영희를 보고 놀랐지만 그런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던 정준을 통해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기본을 지키면 된다고 말하는 듯했고, 오히려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배려’는 아니지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영옥이 장애가 있는 언니를 홀로 보살피며 자라온 시간 동안 감당했을 필요 이상의 죄책감과 강요받았을 선함이 안쓰럽게 다가오면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던 사고의 회로를 점검하게 됐다. 아버지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살한 트라우마로 마음에 병인 생긴 선아(신민아 분)를 알아가고자 했던 동석(이병헌 분)의 노력은 작가의 전작 <괜찮아 사랑이야>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눈물 없는 내게서 눈물을 쏟게 만든 춘희 삼촌과 옥동 어멍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제주의 바다는 잠시 지나가는 이들에겐 멋진 자연 풍경이고 힐링 일지 모르지만,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바다의 파도를 확인하며 살아온 두 삼촌(제주도 방언: 성별 불문 윗사람을 지칭하는 호칭, 김혜자 분)에게는 제주 바다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모든 걸 내어주는 바다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잡아먹은 이놈의 바다. 두 어른이 길가에 놓인 아무 돌탑에 돌을 하나 집어 올리는 그 작은 행동에도 눈물이 났다. 드라마는 섬세하게 두 어른이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지 않지만, 이런 작은 행동들에서 어떤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왔을지가 느껴졌다.
단정함을 강요받듯 획일화된 틀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욕도 잘하고 목소리도 커서 걸핏하면 싸우는 것 같아 보이는 푸릉 사람들이 처음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장사하며 이들의 삶만큼 거친 바다를 상대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내가 얼마나 촌스러운지 부끄러웠다. 이 드라마를 같이 보던 엄마는 이게 ‘진짜 삶’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너는 알겠냐고.’
주저 없이 모른다고 답했다. 모른다는 나의 대답은 알고 싶지 않다는 무심함이나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뻔뻔함, 영원히 알 수 없음에 대한 좌절이 아니었다. 알지 못하기에 알아가고자 하는 이해의 영역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다. 6살 은기보다 내가 30년은 더 살았지만 아픈 아빠 소식을 할머니가 알면 쓰러질까 걱정되어 해사하게 웃으며 거짓말을 하던 그 어린 속을 나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남편과 자식을 바다에 잃고, 종이나 다름없던 첩 살이를 하다 결국 암에 걸려 생을 끝낼 준비를 하던 옥동 삼촌의 마음이라고 알까.
다만 어린 손녀 은기를 돌봐주기 위해 좋아하는 돌고래를 보러 가주는 정준과 영옥이나 선아가 바다에 빠졌을 때 물질하러 나가던 배를 돌려 지체 없이 바다로 들어가던 해녀들의 모습. 어린 은기가 아빠를 살리기 위해 달 백개에 소원을 빌겠다고 했을 때, 춘희 삼촌의 부탁이라며 푸릉의 모든 배가 출항해 불을 켜 달 백개를 만드는 마음은 조금 알 듯하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인색하게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안 했는데...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기꺼이 자신의 하루를 내어주는 푸릉 사람들을 보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진짜 삶의 한 부분을 잊었고, 그래서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아렸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보다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른 뒤 다시 봤다. 학창 시절 함께 만든 추억을 소중한 행복으로 안고 사는 은희(이정은 분)의 행복을 지켜주려던 한수(차승원 분)와 은희가 보여준 우정이나, 인권(박지환 분)과 호식(최영준 분)의 해묵은 오해가 풀리던 이야기나. 고두심, 김혜자 선생님의 출연으로 엔딩을 어느 정도 짐작하며 이렇게 여러모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고단한 인생을 마음에 담고 또 담으며 살아온 옥동 삼촌의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잘하고, 잘했다고 한들 부모의 죽음 앞에 자식은 슬픔과 후회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눈물이 쏟아졌었다. 그렇게 이들이 들려준 살아가는 이야기에 마음을 내주고, 온몸의 수분까지 내주었다.
아쉬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마지막 회는 푸릉 사람들이 이웃 마을과 체육대회를 하며 끝난다. 육지에 있던 선아와 영희, 한수와 미란이도 잠시 제주에 왔다. 그리고선 모두 같은 티셔츠를 입고 앉아 목청껏 서로를 응원했다. 앞으로도 동석은 떠난 어멍을 생각하며 후회하는 날이 있을 거고, 선아는 마음에 불이 꺼져서 오랫동안 켜지지 않는 날도 있을 테다. 영희를 환영하지 않는 세상 때문에 영희와 영옥은 또 상처 입을 수 있고, 영주와 현은 육아라는 새로운 링 위에서 격렬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매일이 똑같은 하루다. 그렇기에 해가 뜨는 시절이나, 중천에 있는 한창의 시절이나, 저무는 시절의 모두 행복해져야 할 사명이 있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은 또 다른 울림을 남겼다.
특히나 옥동이 쓰러져가는 몸을 이끌고서 아들과 함께 한라산을 올라갔던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옥동과 아들 동석의 서사는 온전히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나 두 사람이 한라산을 오르며 나눈 이야기 끝에 엄마 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지금, 너랑 한라산 가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저물어가는 인생에서 '행복'은 무감해지기도 하고, 과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가능한 좋은 것은 자식에게, 다음 세대가 누리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삶의 시작은 시작이라 절정은 절정이라 끝자락은 또 끝자락이라, 그 인생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매 순간 행복해야 하는 사명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청춘을 나이가 어린, (그런 측면에서) 젊은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의 고유한 것으로 보던 시선을 돌려 '황혼'의 청춘을 말하던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tvN, 2016)>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세대의 많은 인물이 등장한 건 한 사람의 생을 풀어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그때 스쳤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에 대한 글은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완성도 있게 담아내기가 힘들다.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민하는 내게 엄마는 나중에, 나중에 가면 더 잘 알 거라고 했다. 비루한 어휘력과 낮은 경험치가 속상하지만, 이번에도 엄마의 말은 옳다. 지금 완벽히 이해하려 하기보단 각 각의 시간에 행복해지는 일에 조금 더 욕심을 둘까 싶다. 행복을 미루지 말고, 어느 순간의 것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오래도록 자주 행복해지는 일 말이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8편의 이야기가 하나로 흘러가는 옴니버스 구성처럼 당신을 움직인 인물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서로 나누다 보면 나란 사람의 비루함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14명의 인물을 통해 각 각 따로 또 같이 들려주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렇게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모여 ‘우리들’의 블루스로 완성되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목청껏 서로를 응원하면서 그렇게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