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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19. 2022

당신이 웃는다면, 해피엔딩

“우리 삶은 동화가 아니기에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완벽한 엔딩으로 끝날 수 없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 시작이다.”


내가 쓴 [나를 멈춰 세운 드라마] 중에서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나는 그녀에게 따로 출간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고맙게도 피드에서 출간 소식을 보자마자 바로 책을 구매해주었다. 출간 직후에는 책을 제작하는 사이트에서 밖에 구매가 안 됐는데, 불편한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주고, 읽고, 다 읽고 나서는 너무 좋았다며 한걸음에 찾아와 축하와 감상을 전해준 그녀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그녀가 위 문장 중에서도 좋았다고 강조한 부분은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였다. 우리 삶은 그렇지 않잖아! 다소 과격한 반응을 덧붙였고. 책 개정을 앞두며 캘리그라피로 옮길 문장을 고르던 중, 그녀가 말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면서, 다시 한번 드라마가 보여주는 엔딩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2022년이 시작되고 벌써 6월이 지났다. 상반기 동안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 (무려) 세 작품이나 된다. 드라마의 평균 회차가 16부작임을 감안하면 두 달에 한 편 꼴로 좋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 셈이니, 타율이 좋은 해다. 내가 말하는 ‘깊은 인상’은 영혼을 다 받쳐 보았다는 뜻이다. 평소 드라마를 보며 손글씨 작업을 하는데, 이 작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본방 시간을 사수하며 온전히 드라마만 보게 했다. 나의 눈코입은 물론 손과 마음까지 빼앗은 작품은 <옷소매 붉은 끝동(MBC)>, <스물다섯스물하나(tvN)>, <나의 해방 일지(JTBC)>다. 엄밀히 말하면 <옷소매 붉은 끝동>은 2021년 작품이라고 봐야하지만, 2022년 1월 1일에 끝난 이 작품의 여운 속에 2022년을 시작했기에, 2022년 편성에 넣었다.


방송사도 다르고 사극과 현대극, 로맨스와 성장물 등 장르마저 다른 작품들 속에서 공통점을 하나 찾자면 ‘엔딩 논란’이 아닐까 싶다. 논란이라고 하니까 조금 자극적인 것 같은데, 세 작품 모두 마지막 회가 방송되고 나서 뜨거운 시청자 반응을 보였다.

실존 인물인 이산과 덕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산의 꿈으로 끝난다. 그것이 꿈인지, 사후 세계인지 연출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살아생전,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던 시절이 16회 한 회에 집중되었는데, 이마저도 덕임이 이산을 선택하여 잃은 자신의 삶을 그리워하는 듯한 심정을 보인 장면이 있었기에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세드처럼 보였다. 역사가 스포라 각오한 엔딩이었지만, 조금은 더 행복한 결말은 없었을까 하는 마음에 보는 이로하여 가슴 아픈 엔딩으로 남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가장 큰 화제의 엔딩은 <스물다섯스물하나>가 아닐까 싶다. 스물둘의 백이진과 열여덟의 나희도. 두 사람이 만난 3년간의 시간이 어떤 모양인지에 대해선 이미 드라마 기획의도에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장 맨 마지막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됐을 때 둘은 사랑했다’라고 적혀있다. 과거형으로 끝난 문장.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졌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드라마의 전개 방식으로 현재 시점에 나희도의 딸이 등장하곤 했는데, 희도의 딸 민채가 백이진을 지칭하는 호칭이 ‘아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남편 찾기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이진이 남편이 맞다, 아니다로 온갖 떡밥이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희도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처음 알려준 수많은 감정들을 우린 무엇이라 정의하지 못했는데, 이들은 무지개에서 사랑으로 정의하더니 끝내는 헤어졌다. 어쩐지 허탈해지는 기분. 두 사람이 서로를 잃고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렸다면, 시청자들 중 상당수는 이유모를 배신감과 주인공들과는 다른 느낌의 상실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제일 최근에 종영한 <나의 해방 일지> 엔딩을 두고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사람들은 해석본을 찾았다. ‘추앙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 작품 쉽지 않겠구나'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 작품을 읽은 기분이었다. 작가는 마지막 회까지 차근, 차근 자신이 풀어놓은 말들을 정확히 주어 담았다. 인상적이었던  주인공들이 추앙을 넘어선 환대로 나가아는 과정이었는데, 특히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씨는 미정의 추앙(응원) 받아 삶을 바꿔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예를들어 자신을 배신  형을 미워하지 않고 ‘환대하겠다고 말했고,  편의점에서   술을 주머니에서 꺼내 노숙자 앞에 두고 가는 장면은 중독을 끊어내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뭔가... 기대했던 결말은 아니었다. 그가 관리하는 클럽 일을 그만두고 산포로 돌아가는 장면을 내심 바랬다. 카드 디자인에 실력이 있던 미정이 다시  일을 하고, 그녀를 회사에서 나가게 만든 불륜 커플이   풀리는 이야기도 보길 바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예상과 달랐던 마지막은 기정이다. 나는 그녀가 태훈에게 결혼을 하자고 했고 그도 응했으니 이후 3년이 흐른 시간 속에 어떠한 진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연애는 퇴보한  보였다. 태훈의 딸과는 사이가   좋아졌고, 태훈의 누나이자 기정과는 동창인 경선은 여전히 기정을 싫어했다. 머리를 자르고 등장한 기정을 보면서 이별로 끝이 나겠구나 싶었는데, 기정은 자신의 사랑을 이어가기로 하며 다시금 사랑을 쏟아붓는다. 그녀의  있는 사랑 덕분에 태훈이 아이처럼 웃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는 마지막 회에서 정돈된, 깔끔한 결말을 보고 싶어 한다. 모든 갈등이 풀리고, 성실했고 선했던 주인공들이 복을 받는 듯 바라던 모든 일이 이뤄지는 꽉 찬 엔딩을 바란다. 드라마 <사내 맞선(SBS,2022)>이 클리셰로 점철되었음에도 사람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받은 건 ‘완벽한’ 마무리 때문이다. <사내 맞선>은 한 번도 애매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답을 아는 듯, 정답만 골라 쭉 쭉 써 내려간다. 고구마스러운 구간은 2배속으로 진행시켜 매 회 오해를 풀고 갈등을 해소 시킴으로 시청자에게 바로바로, 두 사람의 꽉 찬 사랑을 확인시켜주었다다. 그래서 가슴앓이 하지 않고 소화제를 먹은 듯 시원, 시원한 맛으로 <사내 맞선>을 즐겼다. 생각을 비우고 보게끔 연출된 드라마라 그렇게 했지만 나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보여준 이 드라마의 엔딩보다 앞서 소개한 세 작품의 엔딩이 더 오래 남았다.


사람 설레게 하는 짓은 두 사람이 다 해놓고선 헤어진 백이진과 나희도를 보면서 나 역시 아쉬웠던 건 사실이지만, 18살에 시작된 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져 영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오히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국 룰을 보여준 게 조금 더 현실적인 듯하다. 그리고 넘겨짚어 생각해보면 작가는 사랑보다 청춘의 의미를 짚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덜 설레게 하던지. 낭만으로 점철된 드라마가 갑자기 엔딩에가서 현실적으로 변한 건 배신감으로 다가올 법도하다. 드라마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결혼이 꽉 막힌 해피엔딩은 맞는 걸까? 그 엔딩을 얻지 못한 지난 사랑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되는 걸까? 우리 삶은 <사내 맞선>처럼 정답만 선택할 수 없다. 사실은 전부다 애매하다. 오늘 일어난 갈등이 오늘 안에 해결되는 일도 거의 드물다. 많은 경우 내내 괴롭게 하고 때론 이겨내지 못 한채 갈등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밝고 행복으로 가득 찬 엔딩 속에서 이따금 만나게되는 세드인지, 해피인지 모르겠는, 애매한 열린 결말을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나의 해방 일지>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매일, 매일 어렵게 어렵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추앙’을 하고 ‘환대’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인생은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구 씨는 다시 술을 마실 수도, 술 병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기정은 태훈을 사랑하다 또다시 지칠 수도 있고, 자신의 사랑이 힘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엔딩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죽음을 넘어가기 전까진 미완성이다. 죽은 뒤는 알 수 없기에 죽음을 완성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며 끝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엔딩도 기억에 남은 듯 하다.


개인적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엔딩은 꿈인 동시에 사후 세계란 생각을 한다. 그리워하는 마음, 왕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덕임만을 최우선에 둘 수 없었던 이산의 미안함이 만든 꿈이 아닐까. 꿈속에서 덕임과 재회한 이산은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이제는 덕임만을 보겠다는 듯, 열린 문으로 가지 않고 덕임의 손을 잡는다. 그 장면은 또 한 번의 고백이었고 가득 찬 사랑이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곁에 있겠다고 하는 이산을 바라보는 덕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며 웃는다.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삶을 살다 자연히 찾아오는 죽음 앞에 끝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엔딩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백이진이나 나희도, 구 씨, 미정, 기정이처럼 아직 살아있는 이들이 보여준 엔딩은 한 챕터의 끝인 셈이다. 그래서 삶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에 고작 한 쳅터를 끝내면서 이제부터는 평온한 일들만 있을거라는 듯 이야기의 문을 꽉 닫아버리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보다는 살아갈 인생에서 또다시 마주할 수 있는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그들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엔딩이야 말고 행복한, 해피 엔딩이 아닐까. 주인공들이 환하게 웃는 장면을 통해 나는 이들 안에 생긴 ‘힘’을 느낀다. 그래서 내게 위 작품들은 세드가 아닌 해피엔딩이 되었다.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아이처럼 웃던 태훈이 기억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꽃처럼 웃던 산과 덕임도 생각난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한 기억을 되뇌는 이진과 희도가 그려진다. 밝은 낯에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해를 맞으며 한껏 웃는 <나의 해방 일지>의 마지막 회 속 미정에게선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의 지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안, 평안에 이르렀나” 묻는 동훈의 물음에 “네”라고 말하던 그 행복해 보이던 미소. 살아갈 힘을 확인하는, 이런 해피엔딩.


드라마에서까지 갑갑한 현실을 보고싶지 않을 수 있다. 대신 현실에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완벽한 엔딩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도 행복하기만 한 엔딩을 좋아한다. 어떤 시기엔 그런 엔딩을 보기 위해 달리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로 삶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거라고 말하는 위와 같은 엔딩을 보길 좋아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어딘가에 미정이 살고 있는 산포를 지날 것만 같고, 채널을 돌리다가 백이진이 진행하는 뉴스를 볼 것만 같고, 가끔 펜싱을 취미로 즐기러 가는 희도의 모습을 자연히 그리게 하는 그런 열린 결말은 어디선가 저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의 현재로 다가오는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공감하며 그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래서 서두에 쓴 문장이 적힌 글의 제목을 “위로는 현실에서 왔다”로 지었던 것 같다.


이런 내게 있어 해피엔딩은 당신이 웃는 거다. 우리가 헤어지는 길에 당신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면,그날 하루는 해피엔딩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 안에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보았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이렇게 쌓인 우리의 페이지들이 모이면 그때는 자연스레 완벽한 엔딩이 되지 않을까. 모두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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