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할래?"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으냐는 말에 남친몬-이라고 대답했더니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며 구체적인 질문들이 들어왔다. 곧 소개팅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나는 "아이 됐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하며 손사래를 첬다.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불편하면 만나지 마-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봐야 해?"
그런 이유로 만나지 않은 소개팅이 몇 건 되자, 들어오던 것들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올해도 난 혼자다.
참 편리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검색해서 알아볼 수 있고, 어디든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불편한 것들을 '굳이-'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욱이 먹고사는 일이 수월해지면서 나의 편함, 만족이 더 중요하게 되자 '내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더욱 기피하는 듯 싶다.
내게 십년지기 친구가 있다. 과거엔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녔는데 나이가 들어 직장 생활을 하고 이사를 가면서 서서히 교류가 줄었다. 싸우거나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특별한 무언가가 있진 않았다. 다만 각자의 성향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그런데 과거의 관계를 기억한 체, 달라진 현재를 보내니 불편함이 생겼다. 그 불편함은 내 쪽이 컸다. 리더십 있는 친구였기에 모든 걸 맡겼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기 때문에 만났을 때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십년지기인데 편하게 있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내가 편한 대로 있으면 친구가 어색해하는 게 느껴졌고, 친구를 편한 상태로 만들어주면 내가 불편해졌다.
이런 고민을 나누면 그럼 만나지 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다면 내 주위에 누가 남아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불편하다고 모든 피하는 게 맞는 걸까?
지금 좋은 친구가 10년 뒤 이처럼 또 불편해질 수 있는데, 그럼 그 때도 만나지 않으면 그만인 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낯설어서 피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어색함이 불편해서 피했고, 누군가가 불편해서 모두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피했다. 불편함을 피한 이유는 나를 아끼고 배려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랬던 올 한 해 나는 발전하지 못했고 식상함에 빠졌으며 지루했고 달라진 게 하나 없는 듯하다. 나의 일상인 서초를 벗어나지 못한게 거짓말 안하고 몇 달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겁이 났고,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를 감수하고 한 이직만이 올해 내가 건진 유일한 것이 되어버렸다.
불편함은 우리를 발전시킨다.
계단의 불편함을 이기기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생겨났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처럼.
그리고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불편도 있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하는 것처럼.
불편하면 하지 마! 라는 말은 어쩌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서 일을 하면 그르칠 테니 그렇게 할 봐엔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왕 할 거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라"의 뜻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내년에는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평소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피했던 일들의 목록도 작성해봐야겠다.
솔직히 내 안의 불편함을 마주 대하는 것부터가 불편해서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목록들은 내게 새로운 것들의 경험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올 해보다 액티비티 한 내년의 12월을 그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