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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13. 2022

사랑을 한다면 이들처럼 사랑하고 싶다

<닥터스(SBS, 2016)>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었다. 추위를 싫어하는 내게 지금 이 계절은 아쉽게 여름을 보내주며 겨울을 맞는 준비의 시간이다. 따뜻한 옷들로 옷 장의 옷들을 바꾸고, 이른 감이 있지만 수면 양말과 전기장판도 꺼냈다. 그리고 멜로드라마를 시청 중 영상 라인에 올려두었다. 이런 계절엔 멜로를 봐야지. 변하는 계절에 맞는 드라마를 꺼내 보며, 마음의 감수성을 채우는 중이다.


이번에 선택한 멜로드라마는 <로맨스는 별책부록(tvN,2019)>과 <닥터스(SBS, 2016)>. 이 중 <닥터스>는 연애 교과서이자 롤모델로 생각하는 드라마다.  제목만 보면 의심할 것도 없이 의학 드라마고, 국일 병원을 배경으로 환자를 고치며 살면서 생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성장해 나가는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의학 드라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연애에 대한 교과서이자 롤 모델이 된 건, 한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는 게 사랑이라 말하는 이들이 보여준 ’ 기다림’ 때문이다.




혜정(박신혜 분)과 지홍(김래원 분)은 유일한 가족을 잃었다는 같은 상처를 갖고 있다. 혜정이 의료 사고로 할머니를 잃었을 때 지홍은 그녀를 돕고 싶었다. 그 역시 치료의 골든타임을 방해하던 사람들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한때 그녀처럼 마음의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양아버지를 만나 도움받는 법을 익히고 받아들이면서, 사람과 사회를 신뢰하는 인생의 기본을 알게 됐다. 지홍은 혜정이 어머니를 잃고 방황했때 다르게 살고 싶다던 그 마음을 도왔던 것처럼, 할머니를 잃은 그때에도 그녀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혜정은 그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몇 년 후 의사가 되어 다시 재회했을 때 혜정은 지홍을 밀어냈다. 그가 싫다기보단 누군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는 게 무서웠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혜정은 남녀 간의 사랑이란 어느 한쪽이 죽어나갈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진 상처와 못나게 굳어버린 흉터를 보이는 게 두려워 자신의 인생에 어두운 부분에 들어오는 걸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런 혜정에게 지홍은 자신이 옆에 있다고 말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옆에 자신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애매하지 않게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자신의 마음도 분명히 전한다.  


나는 뭐든 정확히 말하는 <닥터스>의 대사가 유독 좋았다. “No means NO”로 되지 않아 “YES means YES” (YES 외의 대답은 모두 NO의 의미)라는 표현이 생긴 지금보다 훨씬 전에 방영된 드라마임에도 극 중 인물들은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한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에 자신의 사견도 붙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에둘러 표현하고, 알아서 알아차리게 만들지 않아 고구마스러운 오해도, 갈등도 없다(물론 초반 진서우 제외). 대본 없는 인생에 저들처럼 매 순간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할 자신은 없지만, 다투는 상황에서 고집스러운 억지를 부린다 할지언정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둘러대는 말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는 이들의 대화를 보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이런 대화 자세는 노력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닥터스> 대사가 피드와 브런치에 별로 없는 건, 좋아하는 대사가 너무 많아 다시 작업할 엄두가 나지 않은 까닭이다. 드라마 속 수많은 명대사 중 내가 좋아하는, 자주 떠올리는 대사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되어가는 일을 ‘한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는 일’로 비유하던 내레이션들이다. 특히 지홍이 ‘기다림’이란 수동적인 행동을 혜정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 대사는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혜정과 지홍은 상처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혼자서 결정하고 책임지던 습관까지 닮았다. 정작 지홍이 그에게 생긴 일을 자신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 하자 혜정은 지홍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마음은 자신의 어두운 인생에 기꺼이 들어온 그처럼, 자신도 그의 인생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었는데 변하라고 그만 화를 내버렸다. 그 후 혜정은 미국에 다녀와야 했던 지홍과 얼마간 떨어져 있으면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려왔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지홍은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혜정의 시간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다그치거나 조르지 않았다. 곁에 있어 주었고, 돕고 싶다 말했다.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세요. 전 옆에 있을게요." 그렇게 혜정도 지홍의 '기다림'을 닮아가며 그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혜정의 인생에 다가가는 지홍의 성숙한 태로를 보는 게 좋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태양을 닮았다. 만약 그에게 상처가 없었다면 혜정을 기다릴 수 없었으리라. 혜정도 그녀의 삶을 무겁게 누르던 지난 상처로 지홍을 위로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려는 상대를 환대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드라마는 혜정의 내레이션을 통해 '연애는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함께 쓰는 공동 역사로 함께 쓰는 연애사의 키워드는 과거 상처를 현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하며, 두 사람은  ‘과거는 수정도 보완도 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일 뿐’에서 ‘사건은 수정 보완이 안되지만 마음은 수정 보완 가능하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의 달콤함은 한순간이고, 잠깐이다. 더 많은 시간을 우린 연인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민낯을 봐야 한다. 상처는 모른 척하면 곪고 더 큰 흉을 남기고, 그것이 또 다른 아픔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두 사람이 사랑의 달콤함만 보려 하지 않고, 아픔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며 곁에 있어주려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았다. 설령 그러다 다툴지라도 상처만 남기는 다툼이 아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그래서 무엇을 해주고, 하지 않으면 좋은지 서로를 알아가려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의 태도는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연인이 생기면 이 작품을 같이 보며 우리도 다투게 된다면 저렇게 다투며, 더 깊이 사랑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왜 상처 있는데, 자아가 단단한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아? 상처를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거든.”


내가 생각하는 상처의 순기능은 상대의 인생을 배려한다는 것이고, 사랑의 순기능은 나를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이다. 드라마 <닥터스>에는 이런 순기능의 모습이 가득하다. 지홍과 혜정의 서사 말고, 서브 남인데 지홍과 브로맨스를 찍는 정윤도(윤균상 분)와 삐뚤어진 진서우(이성경 분)가 자신의 상처와 잘못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에 담긴 서사에도 내 삶에 가져오고 싶은 태도들이 많다.


때마침 김래원 배우님 복귀작 소식이 들린다. 경찰, 검찰, 변호사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소방관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복귀작 제목이 <소방서 옆 경찰서(SBS)>다. 11월 배우님 복귀작을 기다리며 이번 기회에 <닥터스>를 천천히, 한 장면 한 장면 다시 풀어가봐야겠다. 20부작이라는 다소 긴 회차지만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드라마 <닥터스>는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닥터스 총 20부작 SBS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기획 한정환 연출 오충환 극본 하명희

김래원, 박신혜, 윤균상, 이성경 외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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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웨이브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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