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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21. 2022

평온한 밤을 빌어주던 마음

영화[헤어질 결심(2022)]

드라마 [작은 아씨들] 를 보면서 드라마의 대본을 쓴 정서경 작가가 각색으로 참여한 영화 [헤어질 결심]을 티빙 이용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단 소식에 그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주 날것의 감상을 남기려 한다(언젠가 다시 보면 조금 부끄러워질 것도 같지만).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친절한 엔딩에 있었다는 걸,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다시금 확인했다. 천천히, 매주 서사를 쌓아가는 드라마는 감정선과 떡밥의 회수가 동일한 양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열린 결말이라 해도 어느 정도 방향성을 보여 준다. 모든 게 불확실한, 알 수 없는 세상을 살기 때문인지, 성향 탓인지 분명한 결말을 보는 게 좋다. 드라마 세계만은 유치하다 해도 권선징악이 좋고, 진부하다 해도 해피엔딩이 좋다.

하지만 영화는 많은 몫을 관객에게 남긴다. 다시 보는 게 드라마만큼 쉽지 않으니,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은 기억에 남은 장면을 의지해 이야기를 재구성해나가는데,  불록버스터 영화처럼 볼거리가 명확한 장르가 아닌 이상 기억에 남는 장면이 저마다 다르다. 해준(박해일 분)이 서래(탕웨이 분)의 옷을 청색이라고 기억했지만 사람들은 파란색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다시는 찾지 못하게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라’ 던 그 말이 해준과 서래에겐 다르게 남은 것처럼, 같은 걸 보았다 해도 남겨진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두고 우리가 자신이 느낀 바를 서로 나누는 이유가 서로를 더 알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에게 평온한 밤을 찾아준 건 서래였다.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해준은 서래에게 불면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함께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해준은 잠시지만 단 잠을 잔다. 그가 잠을 못 잔다는 건 주변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불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서래였다. 최대호 작가의 시가 떠올랐다.  “어떤 선물이라도 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나는 네게 걱정 없는 밤을 주고 싶어.”  불면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눈 떠 있는 시간마저 몽롱하게, 무거운 몸이 되게 하는 불면은 밤뿐만 아니라 낮까지 망친다. 어쩌면 해준은 이미 ‘붕괴’되었을지도. 서래가 해준을 데리고 눈 내리는 산에 올랐을 때, 서래는 해준이 무너지기 전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밤이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해준은 서래를 보며 혼란스러웠던 게 아닐까. 해준의 수사를 보며 의심하고 안심하는 과정은 해준의 심경이었을지도. 천천히 나도 그 물결에 휩쓸렸다.

“거의 만조야” 

만조에 모래성처럼 쌓아 올려진 모래가 부서졌고, 해준은 풀렸던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그 장면에서 다시 생각났다. 찾지 못하게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라던 그 대화가. 해준은 다시, 평온한 밤을 맞을 수 있을까. 그는 만조처럼 꽉 채워질 수 있을까? 마지막에는 웃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살인이랑 폭력이 같이 있어야 행복한게 그라면 그 웃음은 가득 찼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넘어지며 망가지며 다급히 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다시는 평온한 밤을 만날 수 없을 것 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서래가 일전에 말했던 ‘헤어질 결심’이라는건가. 이또한 사랑이라고 봐야할까? 한 사람의 평온한 밤을 빌어주던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서래가 보여준 모습들이 이해가 가다 이해할 수 없어 마음이 묘하게 아팠다. 친절한 엔딩에 길들여진 내겐 너무도 어려운 사랑이다.


횡설수설하는 듯 한 감상을 남긴다. 여러 해석 글을 읽고 조금은 정돈된 리뷰를 남길 수도 있지만, 그래 버리면 그 기억이 내 것이라 착각할 것 같다. 그건, 그런 사람이 나라는 착각이기도 해서 지금은 평온한 밤과 만조에 부서지는 모래더미, 그 위에 가득 붉은빛을 내며 저물던 태양을 적었다. 어쩌면 ‘헤어질 결심’에 대한 서래의 대사가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와닿는 대목일 수도 있다(그도 그럴 것이 제목이 대사에 그대로 나오니까, 마치 정답 같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은 그 대사가, 서래의 마음이 어렵기만 하다. 이런 걸 기억하는 게 나란 사람이란 거겠지. 기억의 첫 조각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날것의 글을 남긴다.


미제 사건처럼 끝나지 않을 이 이야기는 한동안 내 삶에 밀물과 썰물처럼 오갈 거고, 그러다 어느 기회에 이 영화에 대해 듣는다면, 본다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렇게 또 한 번 이 영화를 해석해 갖고 싶다. 더불어 내게 감상을 나눠준 이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가는 기쁨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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