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뼈의 기록(천선란, 밀리의 서재, 2022)]
손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얇고 길쭉한 손가락에 손톱의 바디도 길어 네일 아트를 하러 가면 사장님들의 예쁨을 받았다. 지금은 세월을 머금어 주름도 생기고 거칠어져 예전만큼 예뻐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졌다. 언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글씨를 많이 써서 그렇게 된 게 아니냐고 짐작했고 정말 그런 것처럼 두 번째 마디엔 펜 대가 닿은 대로 붉게 자국이 나있다. 로비스가 내 손가락을 본다면 글씨를 많이 쓴 사람이라고 알아봤을까? 알게 되었다면 로비스는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배웅했을까?
천선란 작가의 로봇 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 [뼈의 기록(2022, 밀리의 서재)]에는 염을 하는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가 등장한다. 로봇임에도 죽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로비스. 질문을 품은 안드로이드. 염을 시작하기 전 죽은 이의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가시는 길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말하는 로비스. 어떻게 보면 로비스가 염을 하며 보이는 태도는 저장된 매뉴얼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서 나태해지지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도 없다. 모든 죽음 앞에 똑같이 정직한 자세로 마지막을 배웅한다.
“로비스의 입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침묵을 의미하고, 침묵은 위로와 공감을 품고 있다고 무영이 이야기해 준 적 있다. 입을 경박스럽게 움직이지 않는 것, 섣불리 유가족의 말을 침범하지 않는 것, 심정을 쉽게 추측하지 않는 것, 거짓으로 공감하지 않는 것 P35.”
안드로이드에게 염을 맡기는 이들은 대부분 고독사로,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없던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죽은 자신의 몸을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로비스를 택하기도 했다. 많은 말에 지쳤던 생은 죽은 후에라도 고요함을 갖고 싶었을지 모른다. 천천히 돌아가신 분의 몸을 닦다 보면 로비스는 궁금해진다. 몸에 남겨진 문신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변형된 발가락과 발목뼈를 보면서 발볼이 좁고 딱딱한 신발을 오래 신었을 가능성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발목의 형태, 굽지 않은 등과 곧은 뼈, 말리지 않은 어깨는 죽은 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뼈는 한 인간이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하고 변형됩니다. 레나 님의 뼈는 누구와도 같지 않아 고유합니다. P27”.
로비스는 염을 하면서 사람의 몸은 살아온 흔적만 남길뿐 죽음을 기록해두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문처럼 유일한, 그 사람만의 흔적을 따라가며 로비스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았다.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어 모든 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해도.
“그래서 로비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모든 의문의 종착지는 헤아림이다. 그리고 그것은 염을 행하는 안드로이드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였다. 망자를 헤아리고, 남은 이들을 헤아리는 것. 흉내에 불과하더라도 그건 인간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제작자의 철학이었다. p8”
로봇인 로비스가 갖는 의문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염을 하는 것처럼, 흉내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로비스가 의문을 던지며 조용히 헤아림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다. 로봇의 헤아림은 닿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로비스가 염을 하며 헤아려 본 죽인 이들의 삶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조심히 전해지는 대목에선 언제나 코끝이 찡했다. 로비스를 친구라고 불러주었던 모미를 염할 때 로비스는 모미 다리에 남아 있는 화상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화면 속 타오르는 불도 싫어했던 모미가 떠올랐다. 로비스는 염의 과정을 다 마치고도 한참을 모미 곁에 있다, 마침내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건물을 망설임 없이 나간다. “오로지 모미를 불에 태울 수 없다는 마음 하나로.” 죽음에 대한 의문이 닿은 종착지는 모미의 마음이었다. 만약 모미가 살아있어 자신의 마지막을 정할 수 있었다면 화장만큼은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모미의 마음을 깨닫게 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철학적인 질문이 예상치 못한 헤아림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에서 인간은 이해가 부족하다. 다른 생명체는커녕 인간과 인간 사이, 첫 번째 단계조차 넘기 못 했다. 로비스가 인간조차 알지 못 한 죽음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어가는 동안에도 말이다. 나는 물어보는 일에 서툰 사람이다. 혹여 실례가 될까, 질문을 하는 대신 눈치로 지나온 경험으로 소위말해 잘 때려 맞춰왔다. 하지만 그렇게 알아버린 세상은 두리뭉실해져 갔다. 사는 게 특별히 불편한 건 아닌데, 헤아림은 점점 가난해져 갔고 그만큼 나의 세상은 작아지고 있었다. 나만 편한 세상에 다른 이가 놀러 올 리 없지 않은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던 로비스는 모미의 마음을 알았고,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모두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 다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가능성이 로비스가 깨달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건 ‘뼈‘를 닮았다. 모두 있지만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다른 모양으로 남는, 볼 수 없는 불가능한 것.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그 불가능한 것이 ‘우리’라면, 헤아림으로 이끄는 의문들을 던지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겠다. 인간관계는 버겁고 귀찮고 비효율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지금의 지구에겐 어쩌면 더. 너와 나 사이의 우주만큼의 거리가 절망이나 좌절이 아닌, 낭만이 되기 위해선 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