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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21. 2023

내게도 있던 “ ‘첫’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책 [가만한 나날(김세희, 민음사, 2019]

드라마를 보며, 대사를 따라 쓰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 이를 통해 작가는 무슨 말하고 싶은 걸까 ‘이다.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이라지만, 나만의 해석을 위해서라도 만든 이의 의도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제작발표회 기사도 찾아보고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기획의도, 인물설명 등을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소설을 묶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신샛별 문학평론가가 27페이지나 되는 꽤 긴 분량으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 해설 속 문장으로 [가만한 나날]을 한 줄 정리해 보자면 “‘첫’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하나같이 난생 ‘처음 맞닥뜨린 것들’”. 여덟 편의 소설은 20대부터 30대 초반에 걸쳐 쓴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나이대가 작가가 소설을 쓰던 시기와 같았다. 그 시기에 ‘핵심과제’라고 불리는 취업, 퇴직, 이직은 물론 독립과 이별을 그리고 있다.


 ’첫‘순간에 대한 경험이 많은 특정한 시기는 존재하지만, 어느 한순간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가만한 나날] 속 인물들이 일상에 자주 떠올려졌다.


‘가만한 나날’을 읽으면서는 성취감에 중독되어 영혼을 갈아 넣던 사회생활 초년생의 내가 떠올랐고, ‘드림팀’을 보면서는 누군가의 선배가 된 첫 순간도 생각났다. ‘얇은 잠’에서 깬 미려가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마주하면서 느꼈을 불안과 당혹감, 원망 같은 건 어떤 의미에선 첫 순간의 강렬함을 표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곧 그 혼란함 속에서도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일어서서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백하는 미려는 느슨하게 늘어진 지금, 새로운 시작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처음의 순간이 그립기도 했고.


‘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에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던 그가 느낀 심란한 마음과 미래를 향한 불안한 마음을 부침개를 뒤집듯 뒤집을 수 없겠지만,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던 그에게서 본 간절함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훌륭한 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라던 ‘현기증’ 속 원희의 다짐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정서적 독립“을 떠올렸다. 내가 사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사람은 없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이해받기 위한 노력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에게 ’훌륭한 내가 되지 않기 위한 있는 힘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겠다 ‘는 원희의 생각은 그 자체로도 내게 약간의 해방감이 되었다.


‘그건 정말로 너무 슬픈 일일 거야’는 정말이지 슬펐다. 꿈과 희망을 품는 삶에 진아가 보이는 회의감, 냉소적인 시선은 첫 순간의 설렘을 잃어버린 지금의 나 같아서.:. ‘어디를 둘러봐도 젊음과 시작으로 가득했던 그녀는 자신만만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가오는 것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러게 언제부터였던 걸까.


읽는 동안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도 알 듯했다. 평소 단편 소설의 경우 작품 해설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해설을 읽기 전부터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속에서 나의 지난 경험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느낀 것들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처음을 겪고 있는 지금의 누군가도, 처음의 감각에서 멀리 떠났다 생각하는 사람도 이 책에선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킬 여러 존재와 상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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