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작년에 읽은 책은, 당시에도 말했지만, 제목에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 있는 듯 하다다. 이 책을 읽은 지난 6월에서부터 올해 3월까지, 정말 부지런히 살았다.
보통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연말에 새로운 일거리나 이벤트가 생겼다. 작년 한 해동안 꾸준히 웨이브 플랫폼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썼고, 디즈니 오리지널 작품 시사에 참석해 감독님께 직접 질문을 해보는 기회도 가져봤다. 무엇보다 고대하던 한라산 설산을 직접 오르는 황홀한 경험도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 숨 돌릴 줄 알았는데, 2023년은 시작부터 예상치 못 한 곳에 글을 연재하며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요즘 보면 글 잘 쓰는 분들이 진짜 많다. 그게 아니더라도 재미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이런 환경 속에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존재한다. 시간과 시선을 나눠주시는 모든 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내게 기회를 준 분들 역시 내 글을 읽어 본 독자였다. 어떤 제안에서는 오래 읽어 온 시간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렇기에 제안 글을 쓸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여러 곳에서 많이 본 익숙한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 중심의 글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시선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었겠지만 진심은 전해질거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내 글을 좋아하며 읽어오던 분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올해 받은 제안들은 익숙한 브런치 공간을 벗어나, 나란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드라마와 관련된 글을 썼지만 형식과 주제가 조금씩 다른, 낯선 환경이었다. 환경의 변화는 평소에 부족하다고 느끼던 부분을 여실히 드러나게 했다.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면서 좌절과 낙담을 오갔지만,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각 채널의 분위기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정말 치열한 씨름을 했다. 지난겨울에 비해 3kg가 빠졌을 정도로(새로 산 체중계를 불신하며 다음 주 센터 체중계로 다시 확인할 테지만!).
그리고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 좋은 피드백이었지만, 예상치 못 한 반응도 있었다. 소 띠답게 반응들을 다각도로 열심히 되새기고 있다. 그러면서 평온하지 못 한 마음의 일렁임을 느끼고 있다. 제안받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면서, 교만한 자세는 없었나 생각하면서,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서버에 접속해 내가 보낸 원고를 모조리 삭제하고 싶은 마음의 혼돈! 이 또한 성장의 시간이라 생각하며 일렁임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고 말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미성숙한 사람이다.
‘열심히’ 하는 것만큼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한 사람인지라 평가와 피드백에 지나친 수긍을 보였던 것 같다. 새로운 기회에 설레며 열심을 빙자한 스스로에게 취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사이 성실히, 애써서 쓴 글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내가 느끼던 마음의 일렁임과 잠들지 못했던 밤은 만든 이에게 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글이 마음 아파서, 미안해서라는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전고운외 8, 유선사, 2022)] 속 이랑 작가님의 글이 알려줬다.
책을 처음 읽은 9개월 전과 지금의 나는 얼만큼 달라졌을까. 환경적으로는 많은 변화는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글은 쓰고 싶다 쓰고싶지 않다. 그리고 이랑 작가님을 통해 갖게된 숙제는 하나도 풀지 못 했다. 밀린 숙제를 끝내기 위해 나는 나를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조금 더 아껴줄 필요가 있다. 수고하여 쓴 글을 나만큼 애정 갖고 읽어주는 사람이 없음을 이번에 제대로 경험했다. 이런 걸 잘하는 재질은 아니지만, 올해는 독하게 마음먹고 뻔뻔하게 느껴져도(!) ‘내 글의 최고 독자를 나로’ 정하며 팔불출이 되어야겠다. 사랑받는 글이 어떤 빛을 띠게 될지 기대하면서.
또 하나, 나를 아끼고 내 글을 사랑하기 위해서 당분간 억지로 보고 쓰는 일을 멈춰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시가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멈춰 선다는 건 도태를 의미하듯 비슷한 맥락에서 인스타그램 피드도 멈춰져선 안된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러면 안 된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성실이라고 포장해 온건 그저 내 욕심이었다. 드라마를 보며 책을 읽으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됐다. 줄어든 몸무게는 체중의 감소가 아닌 풍요롭게 느끼던 영혼의 소멸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가난한 기분이다. 억지로 가지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놓는 ‘비워내는 글쓰기’를 통해 나를 채워볼까 한다. 치열하게 사는 방식을 ‘많이 해내는 것’에서 ‘짙은 농도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꿔보려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다짐을 적는 글이다.
물론 ’아는 것 빼고는 다 모르고 어리석은 존재인 나 자신을 얼마나 믿어도 되고 얼마나 응원해도 될지 끊임없이 의문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쓸모없는 다짐 같아 보일지라도 올 해는 좀 더 단순하고 용감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