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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28. 2023

지겨운 변호사 드라마 속 <조선 변호사>의 다른 점

MBC 금토 <조선 변호사(2023)>

우도환 배우가 군복무를 마치고 MBC 금토드라마 <조선 변호사>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렇게 올렸던 게 기억난다. "변호사 이야기 지겨운데, 너라면 안 지겨워."


작년 6월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SBS)>에 대해 쓸 때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고 말했고, 다음 9월에는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KBS)>를 리뷰하며 드라마에서 변호사란 직업을 왜 이토록 사랑하는지에 대한 짧은 생각을 담기도 했다. 이제는 등장인물 소개를 볼 때 변호사란 직업이 있을까 무서울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경을 조선으로 옮겼을 뿐, 여전히 변호사가 주인공인 MBC 금토 드라마 <조선 변호사>는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지금, 현재에 어떻게 와닿을 수 있을까?


강한수(우도환 분)의 첫 의뢰인은 매화주 판매권을 독점하려는 장 씨 상단과 맞붙게 된 소상인 박 씨다. 그는 재판에서 국법에 명시된 장사에 관한 법률을 들어 박 씨를 변호한다. 하지만 재판은 법보다 뇌물로 판결이 좌지우지되는 분위기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재판의 결정권을 가진, 지금으로 말하면 판사의 역할을 하는 송관은 이미, 뇌물을 준 장 씨 상단의 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굳힌 터였다. 이런 상황까지 예측한 강한수는 장 씨 상단의 변호인이 준비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판례들을 모조리 외웠고, 재판에서 상단 측이 제출한 판례가 명나라 판결임을 지적한다. 이로서 송관은 장 씨 상단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조선보다 명나라 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역적이 될 상황으로 내몰린다. 결국 송관은 박 씨의 손을 들어주었고, 박 씨도 매화주를 팔 수 있게 되었다.

강한수의 변론은 꽤나 볼만하다. 지략뿐만 아니라 모략에도 뛰어난 그가 펼치는 좌중을 압도하는 변론은, 하던 일 멈추고 보게 할 정도로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강한수가 맡은 사건들 중 쉬운 사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보다 법의 개념이 보수적이던 조선 시대에서 소상인, 아녀자, 과부는 사회적 약자 중에 약자다. 그럼에도 강한수는 모든 재판에서 승소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법 조문에서 예외 조항을 찾아 이를 입증해냄으로 강한수는 제조 마님이 이혼할 수 있는 판결을 받았고, 살인은 살인한 사람의 목숨으로 갚아야 하지만 억울한 소문에 의해 우발적 살인을 한 과부의 죄에 대해서는 임금이 직접 사건을 살펴볼 수 있도록 머리를 쓴 덕분에 과부는 그 형편이 헤아려진 판결을 받는다. 과연 조선시대 김앤장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그는 변론을 통해 부를 늘리거나 명예를 쌓지 않았다. 그럴 심산이었으면 다른 외지부(조선시대 변호사를 뜻하는 표현)들처럼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을 의뢰인으로 두지, 상대편으로 만나는 이런 송사는 맡지 않았을 것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외지부가 되었다고 보기에 그의 태도는 다소 가볍고 때때로 불량하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재판에서 이길 때마다 얻은 건 따로 있었다. 세력가였던 장 씨 상단이 큰 타격을 입었고, 제조 마님의 남편이었던 박제수는 부와 권력을 잃고 영의정의 라인에서도 쫓겨났다. 과부의 송사에서는 돈보다 더 귀한 정보를 얻는데, 바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 사건에 관한 단서였다.


그렇다. 드라마 <조선 변호사>는 일종의 복수극이다. 그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외지부가 되어, 과거 사건에 가담한 자들을 하나씩 찾아내 일부로 상대편으로 만났다. 그리고 재판에서 승소함으로 그들이 가진 것을 잃게 했다. 비록 동기는 선하지 않으나, 강한수의 변호로 의뢰인들의 사정이 나아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잃고 빼앗기는데 익숙해서 이번에도 포기하고 떠나려던 박 씨는 법의 보호 아래 정당하게 장사를 하게 되면서 가족을 지킬 수 있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받던 제조 마님과 과부 또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법으로, 정당하게.


강한수는 '법'으로 싸웠고, '법'으로 이겼다. 재판에서 '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이미 권세를 가진 자들의 손에 있었다. 그래서 법은 있으나 존재하지 않은 재판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한수가 정공법을 택한 건 글도 법도 모르는 무지한 백성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권세자들이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방법으로 저들을 무너트리는 것이야말로 억울한 누명으로 돌아가신 부모님 복수에도 맞는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중반부에 이른 이야기에서 강한수는 시작은 복수였으나 지금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졌고 진짜 외지부가 되고 싶어서, 억울한 사람이 있고 그를 도울 방법이 있는데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갈 수 없다고 한다. 내게 이 장면은 주인공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이야기 속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변화가 아닌, 비슷비슷한 변호사 이야기 속에 드라마 <조선 변호사>가 다른 빛을 내기 시작하는 지점이자 내가 찾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강한수의 변화는 법을 만들어진 목적에 맞게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단 생각이 든다. 그는 법으로 싸우기 위해 깊이 파고들었고, 그 안에는 온통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뿐이라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실력이 있는 외지부로서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승소의 순간들은 법으로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고 지켜낸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순간들은 그로 하여금 법이 수단이었던 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법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했을 것이고, 진짜 외지부로 살아가고 싶게 만들었테다.



이제까지 많은 법정 드라마가 있었고 저마다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었다. 다만 드라마 <조선 변호사>처럼 '법', 그 자체에 집중한 드라마는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법은 숨 쉬듯 자연스럽다. 물론 어렵고 그래서 거리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법의 존재만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법원 사이트에 나와있는 사법제도의 변천을 보니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법기관이 생기고 형벌과 재판제도, 판결문, 재판 법규가 마련되기 시작한 듯 보인다. 조선시대를 법치국가로 보지 않은 듯 하지만, 드라마적인 시선으로 해석해 보자면 조선이란 배경은 국가에 '법'이란 제도가 뿌리내리는 시작점으로, 여느 드라마들과 달리 '법'의 본질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할 수 있게 한다. 법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것도, 뺏고 잃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억울한 사람들의 손수건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임금이 아닌 법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생각했던 극 중 조선의 임금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까 우려했던 영의정(천호진 분)의 손에 살해되고 만다. 왕의 친우로, 그 뜻을 함께했던 한수의 아버지 죽음도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주 공주(김지연 분)와 왕이 된 이휼(송건희 분)이 영의정 세력에 맞서 선대 왕의 뜻을 이어갈 방도를 찾고 있고, 공주는 그 방도 중 하나로 법에 능통한, 실력 있는 한수를 칼로 사용하려 한다. 아마도 한수는 아버지 뜻을 저들과 함께 이뤄감으로 복수를 가치 있는 방향으로 풀어낼 것으로 보인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와 법의 목적은 조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강한수의 변론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다 울컥하기도 했다. 조선으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던 법이라는 손수건은 여전히 작아 슬픔을, 아픔을, 힘겨움을 넉넉히 닦아 주지 못하고 있다 여겨져서 그런 것 같다. 아직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다.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힘. 그리고 그 가치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휘두르지 않고 휘둘리지도 않는 강인함. 그런 의로움으로 진정한 복수를 해내는 강한수 외지부의 이야기는 그래서 조선 시대에 국한된, 지금과 먼 옛이야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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