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May 05. 2023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그게 복수라 할지라도.

디즈니 오리지널 <사랑이라 말해요(2023)>

어느 사이 '복수'를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많아졌다. '복수'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오래 사랑 받아온 이야기 주제의 쌍두마차다. 다만 그동안 '복수'가 '사랑'의 그늘에 묻혀있었다면 요즘은 사랑 없이  '복수'만 이야기에 남았다.


사적복수, 복수대행까지 '복수'의 홍수 속에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한다. 현실의 답답함 때문임을 안다. 나 역시 통쾌한 역전극을 기대하며 주인공의 복수를 응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면서 감정은 변한다. 답답하다. 분명 통쾌했던 것 같은데 속이 시원하지 않다. 복수는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찜찜하기만 하다.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 11화에는 우주(이성경 분)가 엄마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의 전 남편이자 내 아버지란 사람,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떠난 그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온 일. 백화점에서 제일 화려한 옷을 사서 입고, 머리도 하고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까지 끼고서 복수할 목적으로 갔던 마음. 준비한 말만 하고 오자 별거 아니다고 생각하며 제삿밥이나 먹고 오자. 그 여자를 부끄럽게 할 심산으로 다그쳤던 일까지 모두. 그 말을 하는데 우주의 고개는 부끄러운 듯 점점 바닥을 행했다. 그날 이후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생긴 것 같다. 왜 거기를 찾아가서 그 얼굴들을 담았을까. 무거워, 무거워 죽겠다며 울었다.


우주가 말하는 무거움. 사람들이 자주 잊어버리는 복수가 가진 또 하나의 얼굴이다.

동진(김영광 분)은 그 감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주와 비교해 보자면 참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위말해 뒤통수 맞는 배신도 여러 번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억울한 상황에서조차 말을 삼킨다. 참지 않고 쏟아내는 자신의 감정에 상처받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게 더 고역이라던 그다. 그런 동진에게 '만만하니까 당하는 거야'라고 말하던 우주가 엄마 앞에서 무겁다며 우는 장면은 동진을 이해함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장례식 장에서 우주는 자신에게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던 표정을 봐버렸다. 그건 동진이 말하던 '고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복수라는 건 생각만큼 그렇게 속 시원한 일이 아니다. 복수는 양 날의 칼을 휘두르는 일로 복수를 하며 나도 다친다. 때로는 내가 더 다치기도 한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한 복수인가, 무엇을 위한 복수인가. 혹자는 우주가 모질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독하게, 그래 <더 글로리> 속 동은처럼 복수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은의 복수야말로 판타지다. 현실은 우주만큼의 복수도 힘들다. 대부분은 동진처럼 참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 동진이 바보일까?


드라마 10회에 드디어 동진이 복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보처럼 당하던 동진이 자신의 회사를 물 먹이고 갔다 다시 돌아온 거래처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일전에 그가 기다렸던 5시간 정도 기다리게 하려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동진은 거래처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몇 시간이 그에게 고역인 사람이다. 결국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주가 이렇게 말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당한 만큼 갚아주라는 거 아니고, 억지로 하지 말라고요. 마음 가는 대로. 안 내키면 안 해도 되는 거고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이게 맞아요."


동진의 복수는 복수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동진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호구 같아 보일까 봐, 만만해서 번번이 당하는 것 같다는 말에 괜스레 이 악물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받은 만큼 갚아줄 필요가 없다고. 이를 악 물어 아픈 것도 나고, 마음 괴로운 것도 나다. 어떻게 보면 복수는 가해자를 향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괜찮아지는 게 먼저여야 할 것이다. 슬픈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그 정도여야 괜찮다. 그 또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선한 건 책망받을 일이 아니다. 이용해도 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우주도 이제 동진을 탓하지 않는다. 동진을 추궁할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라도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동진은 자신을 이해하게 된 우주로 인해 괜찮아졌다. 상처는 꼭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갚아야만 치유되는 건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쓰며 비로소 괜찮아진다. 사람들의 말,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순간 동진을 괴롭히던 이들은 그의 삶에 어떠한 힘도 미치지 못한다. 우주도 동진의 이해 속에 마음속 응어리가 풀린다. 그렇게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는 사랑을 잃고 폭주하는 복수 이야기들 속에 다시 사랑으로 돌아간다.


마음에 맺힌 상처는 복수를 통해서만 풀어지지 않는다. 복수의 풀어짐이 꼭 용서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또한 마음 가는 대로. 그게 맞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어디로든 흘러 보낸다면, 나는 그것도 어느 방식의 용서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랑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마음 아파해야 할 것 이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나약하다, 네가 만만한 탓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그릇된 시선을,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르는 완악한 마음을 말이다. 잃지 않은 사랑이, 아파할 줄 알게 된 마음으로, 다시 사랑이라 말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겨운 변호사 드라마 속 <조선 변호사>의 다른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