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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y 29. 2023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 “낭만”

SBS 금토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3]

SBS 금토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이하 ‘<김사부>’)]가 3년만에 시즌3로 돌아왔다.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산업의 추세를 생각한다면 3년은 긴 공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김사부>를 잊지 않고 기다렸고, 다시 만난 <김사부>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시즌제 드라마는 ‘한 시즌 안에 끝나는 이야기’와 ‘시즌을 관통하는 메시지’, 이렇게 두 개의 큰 줄기를 갖고 있다. <김사부>의 경우 시즌 1의 강동주, 윤서정 그리고 시즌 2의 서우진, 차은재라는 등장인물의 변화로 전자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들은 최고만 인정하는 경쟁 사회에서 의사로 살아남는 목표만 가진 채 사람을 살리는 ‘방법’만 배웠지, 일의 ‘의미’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다. 실력 중심 사회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왜 의사가 되려 하는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방향을 모른 채 열심히 달린 이들은 자주 길을 잃었고, 최선을 다할수록 이유 모를 허무에 빠졌다. 이곳, 저곳에서 부딪혀 ‘모난 돌’처럼 돼버린 이들이 지방의 허름한 돌담병원으로 오게 되면서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한석규 분)를 만나 “낭만”을 알게 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가진 상처 속에는 ‘출세 만능’, ‘상처 외면’, ‘무시와 혐오’로 가득한 안타까운 시대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이기는 방법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뿐, ‘어떻게’라던가 ‘왜’라는 질문을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일로 여긴다.    


김사부는 이러한 세상을 향해 친절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괴팍해 보일정도로 독한 말을 퍼붓는다. 하지만 그가 주는 불편함은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던 이타심, 책임감, 탁월함 같은 본질을 건드리며, 이를 외면하던 자신을 보게 한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던 이러한 고민은 등장인물들의 트라우마를 푸는 열쇠가 된다. 그렇게 <김사부>는 매 시즌 진짜 의사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들을 통해 시청자들이 자신의 삶을 함께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비록 불편한 과정이지만 살면서 한번은 정리가 필요한 내면의 질문을 꺼내 보고 이에 답해볼 수 있게,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김사부를 완성형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뛰어난 실력과 오랜 경력으로 젊은 의사들을 이끌지만, 그 역시 매 시즌 의사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새로운 문제와 고민 앞에 놓인다. 그때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실익보다 의사로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를 잊지 않는다. 환자를 치료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말하던 그의 “무조건 살린다”라는 외침에는 정체성에 대한 숱한 고뇌의 시간이 묻어 있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인생에 중요한 가치들, 즉 “낭만”은 현실감 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나, 가르치려만 하는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무용해 보이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 삶이 위기를 만난 순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무감해져 가는 시대 속에 변치 않고 ‘낭만’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는 <김사부>를 사람들은 기다린 것이 아닐까.     


시즌 3에서는 염원해오던 돌담병원의 외상센터 시대가 열린다. 김사부가 늘 말했듯 돌담병원의 모든 식구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계속된 성장을 보여준다. 시즌 3는 시즌 2의 주·조연 배우들 모두가 재출연하는데 이 풍경마저 돌담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낭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학보사 고대 신문 ‘타이거쌀롱 1976호’에 게지한 글입니다(타이거쌀롱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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