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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25. 2023

애초에, 생각도 못 했겠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발레리나(2023)>

너 지금 일을 너무 키워놨어.
알아? 이게 지금 네가 이렇게까지, 네가 이럴 일들이 아니라니까! 너 지금 존* 오바하는거야!

그랬겠지.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생각도 못 했겠지, 넌. 다 쉽게 봤으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발레리나> 중에서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사방이 뚫린 모래사장은 어디로든 도망치기 좋은 장소였지만, 총에 맞은 그는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 보인다. 응당 사람이라면 이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되돌아보기 마련일 텐데, 그는 마지막까지 어처구니없게도 남 탓을 했다. “너 지금 존* 오바하는거야!”


그의 손에 민희(박유림 분)가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는 민희를 죽이지 않았다. 직접적으로는. 하지만 그의 서랍 속 USB에 보관된, 허락받지 않은 영상은 민희의 삶을 무너트리고 죽음으로 내몰아 종국엔 민희에게서 삶을 빼앗아 갔다. 그렇게 삶을 빼앗긴 이는 민희만이 아니었다. 그의 서랍 속에 삶을 저당 잡힌 이들은 숨을 쉬고 있었으나, 이미 죽은 자였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옥주(전종서 분)는 알고 있었다. 한때는 경호원으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 일을 계속했다가는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살아있으나 죽어가고 있다고 느끼던 그 순간, 그것도 생일날 우연히 만난 민희는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구나, 알게 해 주었다.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을 때 민희는 옥주에게 타박하듯 말했다. “에휴, 미친년. 죽기는 왜 죽어?” 그랬는데, 그렇게 말한 민희가 죽었다. 너라면 대신 복수해 줄 것 같다는 쪽지 하나만 남긴 채.  



넷플릭스 오리지널 <발레리나(2023)>는 옥주가 죽은 민희를 대신해 복수하는 이야기다. 영화의 평점은 그리 높지 않다. 복수극이라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에 비해 감성적인 영상미, 마약과 그루밍 성범죄를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의견이다. 처음 옥주가 동네 불량배로 보이는 이들과 싸우는 식료품점부터 민희를 만나는 케이크 가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패스트푸드점 신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고 낮잠을 자는 듯 같이 누워있는 장소까지 차가운 복수물과는 거리가 먼 색감이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게다가 그레이의 음악이 한층 더 힙한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복수가 시작되면서 옥주의 세상은 민희가 살아있을 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띤다. 풍경은 점점 황량해지고 위, 아래의 구분 없는 장면의 연출로 뒤집힌 옥주의 세상을 보여준다. 낮아진 조도의 조명과 차가운 색감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살아가는 일에 대한 기쁨, 아름다움을 빼앗긴 옥주의 더 깊은 공허와 상실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만나게 된 여고생(신세휘 분)을 구하며 옥주의 복수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 놓였음에도 끝까지 패악을 부리는 최프로(김지훈 분)는 더욱 어리석어 보인다. 그는 자신을 죽이러 온 옥주에게 "솔직히 내가 죽을 만큼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 아니잖아!"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옥주가 지금 이러는 것, 한 조직이 전멸되고 자신도 죽게 된 이런 상황까지 온 게 과한 처사라고, 오바라는 것이다. 그는 마약을 팔고, 불법영상물을 유포제작하는 일이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곧 그의 마음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은 아니라고. 그에게 이 일은 그저 돈벌이가 되는 장사였을 뿐이다. 누군가 죽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랬겠지.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생각도 못 했겠지, 넌.”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를 향한 옥주의 대사는 자신이 한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의 악한 무지와 무책임함을 꼬집는다. 오늘, 옥주의 손에 죽는 그의 엔딩은 그가 초래한 결과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발레리나(2023)>는 범죄를 결코 가볍게 다루고 있지 않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 중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해 봤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많다.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인터넷상에 올라온 대다수의 살인예고성 글은 ‘장난’이었다. 사람을 해할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혼란에 빠진 시민들은 예고성 글만으로도 불안감에 휩싸였고, 특수경찰까지 배치되어 경계를 강화하는 등 불필요한 인력과 재정이 사용됐다. 경찰은 작성자들을 찾아 검거하고 일부는 구속시켰다. 피의자가 된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솔직히 내가 그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잖아!”  위법여부를 떠나, 해야 할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게 되는 건,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이 느슨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시대의 흐름을 쫓다가 역사의 흐름을 놓치지 마라. 시대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역사는 그렇지 않아. 역사는 지금의 네 이 행동을 반드시 제대로 평가할 거다.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 칼의 소리> 중


각자의 선택과 행동이라 말하지만, 그 행동의 결과가 그 행위를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행동 그 자체의 크고 작음보다 그 행동이 가지는 의미와 여파를 생각한다면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에서 친일파가 되어 동족을 학살하는 광일(이현욱 분)에게 독립운동을 하는 숙부(김종태 분)가 시대가 아닌 역사를 보라고 하는 당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용화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발레리나>를 보며 떠올린 생각하는 삶의 자세를 확장시켜 주었다.


멀리, 널리 보는 시선은 지금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는 일과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나’라는 사람에게 매몰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상황에서 이웃의 환경을, 사회와 국가 더 멀리는 세계와 환경, 다음 세대까지 생각의 지경이 넓어지면 조금더 다정한 사람으로, 주변을 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앞에 펼쳐지는 한 평의 행복만 추구하며 살기보다, 나는 넓게 펼쳐진 행복 속에서 당신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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