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2023)>
토일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2023)>의 1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티저는 무인도에서 15년 만에 구조된 목하(박은빈 분)가 꿈꿔왔던 디바가 되어가는 과정을 희망차게 그리고 따뜻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극 중 기호(문우진 분)가 목하를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처럼 이 드라마도 '없어 보였다'. 걱정 없고, 그늘 없고, 고민 없고, 울 일도 없는 그런 성장물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이 성장은 이뤄질 수 없듯, 목하는 서글프게도 많은 게 ‘있었다 ‘. 눈물, 아픔, 상처 그리고 좌절까지 말이다.
술만 먹으면 때리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다.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 도움을 청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목하가 아닌 아빠의 말만 들었다. 두 팔은 목하가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부분이었다. 경찰은 목하의 두 팔이 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걸 보았지만, 훈육이었다는 아빠의 진술만 믿고 목하의 신고를 중2병 사춘기의 투정으로 치부한다.
만약 학교에 나오지 않은 목하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목하의 사정을 몰랐다면 기호 역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란주 언니처럼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 목하를 철없이 생각했을 테다. 하지만 기호는 단숨에 알아봤다. 목하의 병은 중2병이 아닌, 그도 앓고 있는 도망처야 사는 병이라는 걸.
까까머리에 검은색 둥근 안경테를 쓴 기호는 만화 주인공 영심이 친구 안경태를 닮았다. 하지만 똑똑하고 차분한 인상의 소년이 가진 별명은 가출청소년이다. 밥 먹듯 집을 나갔다던 기호는 얼마 전부터 착실히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가출을 감행하면서 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돈독이 올랐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가출 자금을 모으는 기호는, 완벽히 도망치기 위해 위선적인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을 견디는 중이었다.
목하와 기호, 둘 다 아버지라는 그늘 아래서 간절히 벗어나길 바라는 바람이 있었다. 목하의 노래와 돈독이 올랐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닥치는 대로 일하던 기호의 시간은 "제발 나 좀 구해주세요!"라는 외침이었을지 모른다. 누구라도 좋으니 들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이 바람은 '춘삼도'라는 이야기의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육지와 떨어진 섬이란 지리적 환경이 도움을 청할 곳 없는 두 아이의 현실을 담고 있는 듯하여 더욱 절박하게 들렸다.
목하가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다 떨어진 유람선에서 떠밀려 닿은 무인도 역시 그런 곳이다. 아무하고도 닿을 수 없는 고립된 장소. "제발 나 좀 구해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이 담긴 곳. 도움의 손길 없이, 혼자서는 나오기 힘든 곳. 춘삼도를 가까스로 벗어난 목하는 기호조차 없는 무인도에 온전히, 혼자 고립된다. 그리고 사고로 실종된 목하를 잃은 기호는 춘삼도와 아버지의 그늘은 벗어났을지 몰라도,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섬에 또다시 갇히고 만다.
좌절스러운 상황이 연거푸 이어지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바라본 드라마의 제목은 어색하기만 하다. 무인도의 디바라니.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무인도'에 '디바'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목청껏 불러봤자 허공에 사라질 소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외침을 사라지지 않았다. 퍼져나간 소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대게는 익숙한 방법이나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일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경험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예상된 풀이를 기대한다. 그렇기에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실패로 여기며 좌절한다. 그만두고 싶은 포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춘삼도에서 목하가 청한 도움의 소리는 경찰이 아닌 기호에게 닿았고, 무인도에서 버티던 목하를 발견한 건 수색대가 아닌 보걸(채종협 분)의 팀과 함께 쓰레기 수거 봉사를 나온 우학(차학연 분)이 띄운 드론이었다. 드라마는 이렇듯 예상한 적 없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고립된 섬에서 목하를 구조한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까?
성대결절 수술 후 예전 같은 실력을 되찾지 못해 잊힌 가수가 돼버린 란주는 목하에게 "기다리면 너처럼 드론이 오는 날이 올까?"하고 물었다. 그리고 목하는 "와요! 오지요, 영락없이 온당께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것이 드라마가 무인도에 갇혀있는 것 같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살면서 무인도에 갇힐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선 절대 나올 수 없고, 도움의 손길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무인도에 고립된 것 같은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럴지라도 계속 노래하는 걸 멈추지말라는 듯, 드라마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간절한 바람을 이뤄간다.
아무도 듣지 않는 듯해도 퍼져나간 노래가 어디에 닿아, 언제, 어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화답할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포기는 어떤 순간이라도 이른 선택일지도 모른다. 실낱같은 희망에도 삶을 버티어 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응원하는 토일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는 누군가에겐 목하를 살렸던 아이스박스가 되고 드론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란주의 아이스박스가 되고, 기호의 드론이 될 목하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고립되어 구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순간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