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일에 서툰 생일

by 양보

카카오톡에서 생일 표시를 지웠다. 축하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일 년에 한 번, 생일을 축하하며 안부를 나누는 것도 감사하다. 문제가 있다면 순수하게 그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밭 상태다.


경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을 한 동생은 집과 회사만 반복하는 나를 데리고 북한강 교외로 나왔다.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카페와 음식점 선정부터 운전까지 풀코스로 준비해 준 그녀 덕에 평일 한낮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우리는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두 달 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위해 만났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그녀가 나의 직장까지 와 주었고, ‘퇴근 후’ 시간은 이야기하기에 빠뜻하기만 했다.


보부상인 그녀를 위해 품이 큰 가방을 선물로 준비했지만 포장까지는 못 하고, 크기에 맞지 않은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그리고 비어진 내 손에는 단백질 보충제가 무겁게 들려 있었다.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일전에도 가족과 먹으라고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서 수제 케이크를 한가득 사다 준 그녀였다. 나는 왜 이렇게 섬세하지 못할까. 넉넉하지 못한 것일까. 받기만하는 손이 부끄러웠다.


그녀가 이번에도 밥도, 차도 못 사게 할 걸 알았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매년 선물하는 달력을 담은 봉투에 기름값을 넣어 몰래 차에 두고 내렸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조심히 가라고, 함께 넣은 봉투는 아주 작은 마음일 뿐이라고. 그런데 곧 후회가 밀려왔다. 돈이 가진 성질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성의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 립스틱을 다 쓴 것 같았는데 ,차라리 립스틱을 선물해 줄 걸. 나는 왜 이렇게 섬세하지 못할까. 받기만 하는 손이 또 부끄러웠다.


그리고 또 후회했다. 어째서 즐겁게, 순수하게 받지 못할까.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준비한 작은 성의였지만, 그보다는 기꺼이 준비한 그 마음에 고마워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조금 더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혹 나의 마음 표현이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녀가 만들어 준 즐거움을 빠르게 지워 가고 있었다.


그러나 성숙한 그녀는 카톡에 담긴 이런 나의 마음까지 읽었다. 철저한 준비성에 놀랐다며 농담으로 운을 띄우고는, 혹시 자신이 부담을 주었을 까봐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 날 우리가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우린 북한강을 바라보며 바운더리 관계십에 대해 이야기하며, 건강하게 경계를 만드는 법을 고민했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아픈 엄마를 위해 일찍부터 집안일을 돕고, 엄마의 건강을 챙기며 마치 자식처럼 돌보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제작년 어머니를 떠나 보낸뒤,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 여기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 중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서운하게 할까 봐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갈등을 만들 바에 차라리 자신이 감당해 버렸던 날들. 일이 잘 못 되면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책하고, 미안함에 또 끌어안기를 반복하는 삶. 모든 게 부서져 조각이 나버린 뒤에도 나약한 자신을 탓하고 마는 모습들.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과 만족이 더 중요했던, 경계 없던 관계를 들여다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감정의 동기화로 경계를 잃었다면, 나는 책임과 의무감으로 경계를 잃었다. 주는 쪽이 마음 편했다. 하지만 사랑보다는 ‘해야 함‘의 강박으로 움직이는 루틴화된 인간은 이렇게 진실한 큰 마음을 만났을 때 고장나고 만다. 섬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갚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어그러진 보답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무의식중에 방어했고, 어쩌면 카카오톡 생일 표시를 지운 데에도 이런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내게 받는 일이 어려운, 이런 모양의 사랑이 부족한 나를 알기에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많이 보내주시는 것 같다 말했다. 그 말이 맞다. 생일 표시를 껐음에도 많은 이의 축하를 받았다. 아침에 방문에 적어둔 아빠의 축하 메세지, 언니의 과한 애정 표현^^, 사랑으로 끓인 진한 엄마의 미역국, 동료의 모닝 축하 커피, 코덕 동료가 골라준 새로운 색감의 선물, 생일 소식을 듣고 하던 일을 멈추고 모여 초코파이로 생일 축하를 해준 회사 사람들, 집으로 찾아온 친구, 축하 인사를 나누며 얼굴 볼 날을 잡은 대화들. 인스타그램을 통해 받은 인친들의 축하메세지까지(물론, 인스타에 받은 사랑을 자랑했던 스토리가 또다른 형태의 생일 알람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고마운 마음 앞에 나는 또 안절부절 못한다. 해준 것도 없는데 이토록 진실한 마음을 받아도 되는 걸까. 어떻게 이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다이어리에 생일을 축하해준 이들의 생일을 적어 본다. 받았기 때문에 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다. 1년 365일을 함께 하겠지만,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거야’라던 어린 왕자처럼, 그들이 태어난 날을 기억하며 함께 행복하고 싶다. 사랑스러웠던 말과 행동, 표정도 기억해야겠다. 나를 행복하게 해준 그들을 통해 나는 주는 사랑의 모습을 배우고자 한다. 의무나 책임도 아닌 당신이 내게 그랬던 것 처럼 기꺼이의 마음으로 그 즐거움에 함께 참여해보고 싶다.


축하해줘서 감사해요. 아직은 받는 일이 서툴지만, 당신의 사랑으로 조금씩 기꺼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언젠가 물러서지 않는 거침없는 사랑으로 당신에게 다가가길. 내년에 또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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