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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by 양보

오른쪽 엄지손톱 밑으로 거스러미가 생겼다. 작게 뿔처럼 돋은 거스러미가 한번 눈에 들어오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머리를 쓸어 넘길 때 툭 걸리고, 니트 소매에 부딪히며 툭, 툭. 거스러미가 점점 고개를 치켜드는 듯했다. 그러다 지루한 대화가 이어지던 긴 테이블 아래로 감춰둔 손이 보이자, 살짝살짝 손톱으로 긁었다. 조금씩 뜯겨 나가다 끊어질 줄 알았는 던 거스러미는 생명력이 좋았다. 줄기가 굵어지더니 피가 맺힐 정도로 깊이 긁혀 내려갔다. 아, 따가워. 짧은 외마디를 듣고 나서야 거스러미는 엄지 손가락에서 떨어져 나갔다.


맺히는 피를 휴지로 꾹 꾹 눌렀다. 그래도 계속해서 피가 새어 나와 하는 수 없이 밴드를 붙였다. 키보드에 마우스에 피를 찍고 다닐 수 없으니. 거슬리던 거스러미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거슬리는 일은 계속됐다. 엄지손가락에 둘러진 밴드는 핸드폰 터치를 방해했다. 엄지 손가락 젤 윗부분으로 터치해 가면서 쓴 문자는 해독이 불가한 외계어였다. 회사 층마다 설치된 지문 인식 기계는 밴드가 둘러진 엄지 손가락을 인식하지 못했다. 출입 불가라는 ‘삑-’ 소리에 거절감을 느끼며 밴드를 풀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너덜너덜해진 밴드를 새것으로 갈고 퇴근했다. 작은 상처인데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났다. 손톱깎이로 잘라냈으면 될 일을 크게 만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긁어 부스럼’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


지내다 보면 마음에 엄지 손가락에 돋아난 것 같은 거스러미가 생긴다. 연말이 되면서 정리해야 하는 큰 업무들로 인해 이번 11월은 유독 정신없이 바쁘고, 분주하고, 낯선 일로 가득했다. 타인의 불행을 지켜보는 자리에 있어야 했고, 그 갈등 사이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감정에 휘둘렸다.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작은 감정들. 이런 거스러미에 맞는 손톱깎이를 찾아 바로 잘라냈으면 좋았을 텐데, 질질 끌려다니며 마음에 생긴 거스러미를 길고 깊게 긁어 상처를 만들었다. 마음이 욱신거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잦은 텐데, 마음에 생긴 거스러미를 어떻게 싹둑 잘라낼 수 있을까. 그게 안 된다면 상처를 만들지 않도록 정리할 방법은 없을까. 손톱깎이를 찾자. 거스러미를 톡-하고 잘라 낼 기분 좋은 것들-전기장판이 켜진 침대, 하루를 마무리하며 드리는 감사 기도, 혼자 고요함 속에 즐기는 따뜻한 라테 한 잔, 엄마와의 포옹,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격려(낯간지럽지만)- 그리고 뭐가 더 있을까.


거슬린다고 거스러미를 상처로 만들지 않도록, 손톱깎이를 더 많이 구비해 둬야겠다. 연말이라는 분주함 속에 놓치지 말고 마음에 거스러미가 돋아나지 않았나 살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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