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2025)>
우리나라에는 ‘말’에 관한 속담이 많은 듯하다.
말이 씨가 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등등.
드라마 <런 온>에서 미주(신세경 분)는 말로 상처 주는 단아(최수영 분)에게 “말로 천 냥 빚 갚겠다고 하면 놀라겠네요”라고 말한다. 대화자와 그들의 관계, 전후 상황을 살펴 영화를 번역하는 미주는 자기중심적 화법을 쓰는 단이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종종 이렇게 귀여운 핀잔을 주었다.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 나가던 드라마의 정체성이 담겨있던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들을 때마다 이 드라마가 생각난다.
관계의 언어
최근 시청을 마친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를 보면서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이 얼마나 다정한 말인지-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주호진(김선호 분)은 4개 국어를 하는 통역사지만, 차무희(고윤정 분)의 말은 어렵기만 하다. 호의로 알아듣고 다가갔는데 아니라고 밀어냈다. 거절로 알아듣고 피해 줬더니 다시 찾아왔다. 무희는 ‘아무 말’을 가장 잘했다. 생각이 정리돼야 말을 하는 호진에게 그녀가 쓰는 같은 모국어는 처음 듣는 외계어 같았다.
호진의 스승이기도 한 소설가 영환(김원해 분)은 무희의 말을 알아듣지 못 한 채 그냥 둘거냐며, 통역사인 그의 직업을 환기시킨다. 단어와 순서, 느낌표인지 물음표인지. 때로는 문장 그 자체보다 말을 하는 사람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진심’을 알기 위해, 영환은 잘 들여다보고 잘 해석해 보라 권한다.
이상한 사람이란 경계를 풀고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자, 무희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감정이 충돌할 때면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쏟아낸다는 걸 알았다. 무희는 호진이 뾰족하게 말할 때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안에 자신을 향한 걱정과 염려, 애정이 담겨 있는 실은 단단하고 반듯한 언어임을 알게 된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무희의 ‘아무 말’이 엉킬 대로 엉켜버린 관계를 푸는 부드러운 윤활제가 되었고, 당신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할 때는 그 어떤 언어보다 입맞춤이라는 만국공용어만 한 게 없었다.
오로라, 폭포, 네잎클로버. 두 사람만 아는 단어가 쌓여갈수록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다정한 순간이 늘어간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이해가 쌓인 관계의 언어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임 새삼 알게 한다.
얼마 전 회사에 외국인 의뢰인이 방문했다. 담당자가 오기 전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이 안 되는 영어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스피킹 시험에서 절망적인 점수를 받는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건, 서로의 말을 들으려고 애쓴 마음 때문임을 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만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날이 선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의 속도를 조절하고자 한다. 듣고자 하는 마음, 관심은 그 사람의 언어를 해석하는 열쇠이기에.
찰떡 같이 말하기 위해 호진처럼 정리되어 말을 해야겠지만, 가끔 부족함을 비집고 튀어나 버린 개떡 같은 나의 말도 찰떡같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정한 관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