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잔잔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 이런 영화가 좋다.’
‘내용이 뻔하지만 요즘 같이 어수선할 때 보면 좋은 영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에 달린 리뷰다.
누가 뒤통수를 칠지 몰라 불안하게 만드는 K-드라마식 흐름에 길들여진 까닭에, 결말에 이르러서야 착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가 중요한 영화나 드라마는 현재의 일상을 민감하게 포착해 담아낸다. 웃자고 하는 말인 줄은 알지만, 나는 가끔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K-드라마식 흐름’에 길들여졌다는 말이 우리가 사는 일상이 얼마나 각박해졌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끝까지 본다면 ‘뻔한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극적인 맛이 없는 착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어수선함을 생각할 때, 뭉클한 반전이 된다.
가령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 하지만 이 말이 이제는 옛말처럼 들린다.
아이들이 싸우면 곧 어른 싸움이 되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우정을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아이들이 익힐 기회를 빼앗아 가는 듯하다. 그래서 이레와 나리가 싸우고 화해하는 서사가 누군가에게는 뻔하게 느껴질지라도, 아이들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는 일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사는 게 힘든 게 어른이라 더 하고, 아이라고 덜 할까. 그런데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면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어른이 된 것 같다. 힘든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아이가 가진 강함은 보지 못한 채, 모든 걸 다 아는 어른인 척 굴었던 자신이 떠올라졌다.
어려서, 또는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뭘 하고 싶은지 모를 뿐이다. 그럼에도 다 아는 척 구는 어른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더해져 더 많이 헤매고, 그래서 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선생과 제자, 어른과 아이, 가진 것의 많고 적음으로 편을 나누지 않는다. 서로 다르지만, 잘하고 싶어서 힘들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애쓰는 같은 마음을 지닌 존재로 한 이야기에 담는다. 이것이 우리가 괜찮아지는 방법이 아닐까?
“인생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의 복습이란다.”
폐교가 결정된 다이묘 초등학교의 포스터에 실린 문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필요한 건 이미 초등학교에서 배웠다. 너무 오래전에 배워,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다시 짚어주는 이 영화는 초등학교 같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차갑게 자신만의 성에 갇혀 지내던 설아(진서연 분)의 웃는 장면이 늘고, 그만큼 제자 이레(인영 분)의 잔소리도 늘어난다. 센터의 부담에 굳어가던 수빈(나리 역)은 이레와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춤을 춘다. 상황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
설사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그건 한 시기를 지날 때 생기는 굴곡일 뿐이다. 용서와 화해를 배우고,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 된 우리는 괜찮고, 괜찮아진다. 뻔한 착한 이야기는 이렇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