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2025)>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의 1–8화 소제목은 ‘이름’이다. 그럼 여덟 사람의 이야기일까.
예고편에는 ‘사라 킴’이라 불리는 한 인물을 쫓는 형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여덟 개의 이름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무명녀,
누군가에겐 사라 킴,
누군가에겐 목가희.
이름조차 가짜였으니, 그들의 진술에서 단 하나만 진짜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
하나의 이름을 파헤칠 때마다 그 이름을 설명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녀가 만들어 제공한 ‘모습’을 전달했다.그녀는 여러 입을 통한 설명으로 존재했다.
“진짜는 설명이 필요 없고
가짜는 설명 없이 존재할 수 없어요.”
긴 설명 속에서 그녀는 더 선명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설명의 길이만큼
가짜라는 증거가 됐다.
그럼에도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는 그들이 자각하지 못했던 갈증까지 채웠다. 그녀의 모든 게 거짓이라 해도, 남은 만족감은 진짜였다. 찰나일지라도 그녀는 그들의 삶에 실제 하는 존재가 된다.
문득 드라마 <런 온>의 대사가 생각났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졌다.
그게 가짜라도.”
“꼭 진짜만 의미가 있냐. 가짜가 어때서.”
아직도 아리송한 대사지만,
가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짜만이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진짜를 향한 그녀의 열망이 도를 넘어선 건,
결핍이 던지는 메시지를 잘못 오역했기 때문은 아닐까?
“결핍은 늘 과잉을 부르기 때문이다.”
<관계를 잇는 시간>, 문요한, 더 퀘스트-
결핍과 과시는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결핍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게 단단히 숨겼다.
그 자체가 과잉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안다.
세상 사람은 속여도 나까지 속일 수는 없다.
구멍 난 독에 물을 부어도 결국 빠져나간다.
결핍은 과잉을 부르지만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킨츠기’라는 도자기 수선법은 깨진 틈을 금으로 메운다. 불완전함은 오직 하나뿐인 새로운 완전함이 된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과시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주 작게는 결핍을 인정하는 일.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정이 있어야 왜곡 없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갈 수 있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결핍은 다른 누군가에겐 추구하는 상태일 수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모든 걸 잃고 얻은 단 하나가 진짜라면 이 이야기의 시작점인 그녀는 무엇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를 보며 진짜와 가짜가 중요한 걸까?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가 생긴다. “부두아.” 이 한 단어로 그녀의 존재는 넘치게 설명된다.
모든 것을 잃고 남은 하나가 진짜라면 그녀가 만든 진짜는 결국 그녀 자신이 아니었을까? 대중에게 잊히지 않을 존재감으로 남게 된 이름.
그녀는 레이디 두아다.
그리고 아이너리하게도 ’부두아‘를 따라다니는 과잉된 설명은 또다시 그녀를 가짜로 만든다.
내가 헛되게 채우는 과잉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