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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Dec 09. 2016

낭만 닥터 김사부(SBS,2017)

너는 너의 일을 해, 난 나의 일을 할 테니까.



김사부는 매사에 이랬다.

의사의 일은 환자를 살리는 일. 나는 살린다. 살리는 것 외엔 없다.

그러니 여러 이해관계에 의한 논리는 너의 일이다. 넌 너의 일을 해라.

도도한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발끈하거나 상처를 받지만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 번도 없었어요. 단 한 번도 죽고 싶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문 선생님이랑 사고가 나던 순간에도 나는...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보다 살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고 싶어서. 그게 미안해서... "

"윤서정 선생은 왜 의사가 되었습니까?"
"의사가 되면 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의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매 순간이요. 환자를 위해 결정 내리는 매 순간 마다요."

-9화-



서정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건으로 거대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이가 내려온다.

서정의 대답 한마디 한마디에 의사의 면허가 정지,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

죽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묻는 질문에 눈물을 토해냈다.

의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를 악물고 "매 순간"이라고 대답한다. 

언뜻 이 대답은 의사로서의 삶을 그만두길 원하는 듯 볼 수도 있지만, 대답을 하며 움켜쥔 손과 결연한 표정에서 의사로서 책임감 있는 진심을 느낄 수 있다. 


현재 나는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형태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일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순간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담되는 순간이 많다. 보통의 다른 드라마였다면 흔들흔들거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답답했을 텐데 서정의 대답엔 지금 나의 고민 담겨있었다. 



김사부는 단번에 동주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알아차렸고 팩트 폭행을 날렸다. 덕분에 극 초반 동주는 김사부와 번번이 부딪혔다. 그랬던 동주였는데... 연화의 질문에 무심히 대답하는 동주에게서 김사부가 보였다.


김사부가 동주 속에 있는 모난 부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그의 모습이 자신의 과거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김사부는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씨름했고 동주는 그런 김사부를 보며 닮아가듯 성장하고 있어 보였다.


"저기요, 선생님. 혹시 일을 그만두고 싶단 생각 해본 적 없으세요? 그만두고 싶을 때 어떻게 참고 넘기셨는지... 궁금해서요..."
"글쎄요. 여태까지 고생한 게 아까워서 못 그만둔 것도 있고, 이걸 그만둔다고 딱히 다른 걸 잘할 용기도 없었고."
"그게 단가요? 뭐 의사로서의 신념이나 사명 그런 거는요?"
"그런 걸 알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입으로 떠드는 거랑 진짜 아는 거랑은 다른 거니까"
-10화-

 


20살 대학생 때 졸업을 목표로 살아가면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대부분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이상이지만, 아무튼 사회인이 되면서 직업에 대한 소망도 있었다. 그러나 30살이 되어버린 지금 모두 사라져 버렸다.


받은 만큼 일하자,라는 닳고 닳은 마인드가 오히려 나의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일을 통해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사실.. 휘청 해버렸다.


경쟁시대.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돼버리거나 지쳐 나가떨어져 소멸되길 바라는, 본의 아니게 우리의 목적은 극단적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엘리트 전성시대에 기득권 층은 편리하게 관리하는 시대로 만들었고 그 안에서 나는 모나지 않으려고 그 틀 안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똑같이가 정답인 것처럼 사느냐 생각하는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궁금하다.

드라마는 아직 중간이고 앞으로는 병원 내 권력 분쟁으로 인한 고구마 같은 장면들이 더 연출될 것이다.

얼마 전 종영한 닥터스가 의학드라마 안에서 진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낭만 닥터 김사부는 의학드라마 안에서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로서 해야 할 일, 일의 의미와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어린 세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에게 고민거리를 얹혀주면서 여전히 고민하는 김사부의 모습이 기대된다.

+

어느덧, 김사부의 마지막이 방송되었다.

언제 철들지 싶었던 도인범 샘의 성장이 가장 뭉클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이뤄내고 그것을 준다. 부모의 이름을 스펙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기만 한 걸까? 소위 말하는 금수저에 관한 좋지 못한 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빼낸 도인범의 용기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자신의 크기를 직면한 도인범의 성장이 그래서 멋있었고, 그의 첫 반항이 제대로 된 반항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좋을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도인범 그대로 봐준 사람들. 이 드라마가 2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데에는 이러한 장면을 현실에서도 보길 희망하는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를 믿어줄 사람, 어지러운 때일수록 자리를 지키라고 해주는 사람, 매 순간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그래도 무엇 때문에 사는지, 왜 사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김사부 같은 사람을 우리 모두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다.


마지막 회에 응당 등장할 처절한 악에 대한 복수! 는 없었다. 자승자박,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김사부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이사장에게 일렀을 거란 생각에 서둘러 내려와 제 입으로 자신의 죄를 오해라며 이사장에게 고스란히 이야기한 도원장은 그렇게 스스로 무너졌다. 사실, 처절한 응징! 을 내심 기대했는데 그런 내게 '너나 잘해라'라고 하듯 김사부 다운 복수를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메시지를 남긴다. 무엇 때문에, 왜 사는지 고민하는 김사부가 내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거기까지였다. 도원장을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까지. 그 이상은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일을, 너는 너의 일을 하면 된다는 그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무한 경쟁의 시대, 낭만을 잃어버린 우리를 향해 김사부는 잔소리를 해 댄다. 이 잔소리에 대해 외상 병원이 세워지고 난 뒤, 김혜수 언니의 등장과 함께 시즌 2로 돌아와 지친 시기에 그가 우리의 잃어버린 낭만적 자세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불러일으켜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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