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엄마 맘을 알지.”
엄마 잔소리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몇 년에 엄마는 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자식을 기르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많은데 마치 넌 힘들게 살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엄마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작년,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연말에 나는 대상포진이 재발했다. 이불 밖도 나오지 못하고 끙끙 앓는 내게 엄마는 그간 하지 않았던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엄마 마음을 알지' 소리를 하셨다. 작고 안쓰러운 목소리,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에서 속상한 마음이 묻어났다. 이만치 아픈 엄마의 마음을 안다면 어서 나으라는 응원이었을터.
엄마가 약속한 의미를 알기 때문일까? 이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말을 나는 한동안 곱씹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엄마의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경험케 되는 일들을 통해 ‘엄마’라는 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의 엄마, 서른다섯 해 나를 길러온 현숙 씨의 마음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나는 종종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나의 아이에게 해줄 자신이 없다고. 그런 내게 엄마는 내리사랑이라며, 사랑은 흘러 내려가면서 더 커지는 것이니 나도 분명 잘 키울 것이라고 다독여주셨다.
태생이 이기적인 내가 자식을 잘 키운다면 그건 온전히 엄마의 사랑 덕분이겠다. 나의 아이를 키우는 그 힘마저도 이렇듯 나는 엄마로부터 받은 셈이다. 그렇기에 내 아이에게 나의 엄마가 해준 것처럼 사랑을 주어 키울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엄마에게 내가 그렇게 해드리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므로.
사실 엄마는 내가 아프기 며칠 전부터 이미 몸살을 앓고 있으셨다. 면역억제제를 먹는 엄마는 일반 약을 먹을 수 없으니 오롯이 아픔을 몸으로 견뎌야만 했음을 안다. 지친 엄마에게 뭐라도 먹고 쉬라며 아빠가 사다준 딸기는 하루 만에 나의 것이 되었다. 내가 아프자 엄마는 다 나은 사람처럼 움직이셨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자 엄마는 그제서야 다시 아프기 시작하셨다. 나는 엄마의 딸기뿐만 아니라 쉴 수 있는 시간마저 빼앗은 셈이다. 자식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또다시 통감했다.
감사한 사실은 엄마는 내게 당신만큼의 사랑을 원하지 않으며, (나는 모르는) 자식이 주는 어떠한 기쁨을 받고 있기에 충분하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믿어서인가, 오늘도 나는 또 다시 철 없이 군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나를 위해 긴 시간을 헌신한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헤아리며 사는 것뿐. 아,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언젠가 홀로 남아 비어진 엄마의 자리를 보며 마음이 덜 아프고 싶은 이기적인 자식으로서,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니 내 곁에 좀 더 오래 계시라고, 이 험한 세상을 좀 더 같이 있어 달라는 이기적인 바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