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와 무선 키보드를 챙겼다. 명절을 앞두고 복닥이는 집에서 도망을 나왔다.
집 앞에 있는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추운 게 뭔지 모른다는 듯,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공을 차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주한 출근 길 속에서도 아이들 소리는 시선을 끌었고 미소를 짓게 했다. 평소와 다른 풍경은 운동장 만이 아니었다. 조용한 골목을 오랜만에 천천히 걸었다.
골목을 벗어나자 멀찍이 두 사람이 보였다. 나이 든 노견을 산책 중인 부부. 개를 가운데 두고 양 쪽에 선 부부는 별 말 없이 개를 보며 걸었다. 갈색에 곱쓸거리는 털을 가진, 푸들처럼 보이던 개는 줄을 잡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머니를 보았다. 개의 시선을 따라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런 뒤 부부는 다시 앞을 보며 걷었다.
거리가 조용했기에 노부부가 무슨 말이라도 나눴다면 내게까지 들렸을 것이다. 하나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이 오고갔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들에게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대화가 된다. 궁극의 편안함, 내가 바라는 관계의 모습 중 하나다. 먼 발치에서 함께 걷던 우리의 동행은 코너에서 끝이났다. 괜한 아쉬운 마음에 나는 잠시 서서 반대 쪽으로 걷는 노부부를 눈에 담았다.
이기주 작가는 <말의 품격>을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이 글을 보는데 시선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던진 말에 그 사람의 체취, 고유한 인향이 드러나듯, 무심코 닿는 시선에도 평소하는 생각, 담기는 마음들이 드러나는 듯 하다. 얼마전 <그들이 사는 세상>을 다시 보았다. 10년만에 다시 본 드라마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 했던 주인공의 마음이 보였다. 특히 엄마를 대하는 준영과 아빠를 대하는 지오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았다. 부모님에 대해 마음이 유독 커지는 나는 이 둘의 사랑보다 그 마음에 더 많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바라봄에 대해 곱씹으며 평소 나는 무엇을 보는지 기억을 더듬다, 어떠한 것들을 봐야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작은 여유가 필요할 때면 지금처럼 깨끗하고 청량한 하늘, 짙은 어둠 속 빛나는 달을 보며 생각을 버리고, 따뜻한 계절이 옴을 느끼고 싶으면 길어지는 해를 바라볼테다. 나태주 시인의 시 처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며 사랑하고 오래 봄으로 가치를 발견해주고 싶어졌다. 말 뿐만 아니라 시선에서도 좀 더 나은 나를 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