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자 꽃이 지기 시작했다.
나무 가지에는 듬성듬성 돋아 나는 푸른 잎과 떨어질 분홍 잎이 어우러져 있었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앞자락이 마주 닿은 모습이었다.
나무 아래는 꽃 향이 그득했다.
떨어지는 꽃잎이 향을 내 가까운 곳까지 가져다주었다.
향기를 잃은 꽃 잎은 이내 곧 발 밑에 뭉개졌지만,
내 걸음을 따라 묻어온 꽃 잎이 그렇게 나와 몇 발자국을 더 걸어가 주며, 꽃 길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여태 추운 나는 봄의 길목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언제나 아쉬운 봄이 가면서 내 손 끝과 발 끝에 아리게 남은 추움도 가져가겠지.
그렇게 머물러 떠남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시작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