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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29. 2019

손글씨 보부상

어쩌다보니 캘리그라퍼가 되었다.

그저 마음에 와 닿은 책 구절, 노래 가사, 영화와 드라마 대사를 옮겨 적었을 뿐인데 ‘캘리그라피 작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만 긴 문장을 주로 이루는 나의 글씨는 선이 굵고 붓 글씨에 가까운 일반적인 캘리그라피와는 조금 다르다. 하여 나는 손으로 써서 글귀를 옮기는 이 활동을 ‘손 글씨 보부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 타인이 쓴 문장에서 나를 발견한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깔끔한 문장으로 눈앞에 놓였을 때의 기분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내 마음이 이해받았다는 생각에 반갑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위로가 된다. 말은 잘해도 감정 표현에 서툰 나는 누군가 정리해놓은 문장들을 옮겨 적으며 나를 표현했다. 그렇게 나의감정을 알아가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이 유독 많은 당신, 표현에 서툰 당신, 마음에 가득한 말이 아직 적절한 언어를 만나지 못한 당신을, 자신을 알아 갈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좋겠다. 가슴이 답답할 땐 글을 쓰라고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문장을 옮겨 적으면서 예쁘고 잘 읽히기 위해 두세 번 다시 쓰다보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잡념은 어느새 사라진다.



영국의 역사가 액톤 경은 이렇게 말했다. 읽는 것만큼 쓰는 것을 통해서도 많이 배운다고. 시의 한 구절로 마음을 정리하고, 영화 속 대사로 마음을 표현하고, 노래 한 자락으로 공감하며 울고 웃을 수 있는 타인의 문장을 빌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타인의 문장을 통해 어느덧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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