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지금도 행복하길

by 양보

몸이 안 좋아진 뒤에 거금을 들여 홍삼을 주문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잘 다려진 홍삼을 빈 속에 쭉 들이키면, 입 맛을 잃는다. 배가 고파 눈이 떠졌어도 홍삼의 쓴 뒷 맛은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사라지게 만든다.




"참고 참고 참으라고. 그런데 언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자나.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해서 버텼더니 악 밖에 안 남더라. 그렇게 해서 뭔가를 이루면 뭐해. 악만 남은 나는 못돼 졌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했고 결국 나도 괴로워졌는데. 이번에도 참고 버텼는데 그때처럼 그렇게 될까 봐, 언니 나는 그게 두려워."


나 또한 그녀에게 참으라고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녀가 드린 시간과 돈,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조금만 더 버티자며 그녀를 격려했다.


삶은 예민해도 자신에게는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그럴지 몰라도, 나는 참음에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글들에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울 때,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들 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염려스러울 때 그리고 그녀처럼 결과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조금만 더 버텨 보라고 한다. 적고 나니 모든 순간을 참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만둘 마음이 상황에 부딪혀 볼 용기를 주었고, 레슬링처럼 버티기 한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인생에 참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감정과 아픔에 무딘 나는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무리한 스케줄과 깊은 빡침으로 대상포진이 재발했다. 악으로 깡으로 견디는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모든 버티는 시간을 그렇게 버티라면, 뼈가 삭을 것 같다. 미움과 원망, 이 같은 감정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병을 만드는데, 그런 감정으로 버텨야 한다면 궁극적으로 기쁨과 만족을 누려야 할 때 그 감정들은 남아있을까?

진심으로 응원함이었고, 누구보다 너의 열심을 아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나, 그저 버티라고만 말한 것 같아 그녀에게 과거의 나에게 미안했다.




지친 그녀의 에너지는 방탄소년단이다.(덕질은 삶을 사는 데 아주 중요하다 :)

시작의 길은 내가 터준 것 같은데, 지금은 그녀에게 인도함을 받고 있다. 그녀의 결제력으로 방탄소년단의 <Burn the Stage>를 보았다. 영상 후반쯤 방시혁 피디와 방탄소년단의 짧은 대화 장면이 나온다. 방시혁 피디는 방탄소년단에게 지금도 좋지만 다음 스텝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그들의 다음 스텝은 앨범의 컨셉, 활동 방향이 아닌 그들이 행복해지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들이 좋아서 시작한 음악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로만 느껴진다면 불행한 기분이 들 수 있음 걱정한 듯하다.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음악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그들도 스스로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열심히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열심히 산다. 목표를 정하고 돈도 모으고 그렇게 살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온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상하고, 돌보지 못한 몸은 망가지고, 오해가 쌓이며, 사랑하는 이와 멀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건 어렵지만, 목표를 향해 뛰는 토끼를 지켜보듯 행복을 향해 뛰는 토끼도 살펴봐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피지 못한 쓴 뿌리가 요즘 말하는 꼰대가 되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버티는 시간을 보내는 그녀에게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치료해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해 준 여러 마음 중 가장 너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그 상상이 현실이 돼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 행복감이 버티는 시간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의 크기는 조금 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녀에게는 미약하지만 효과가 있는 듯했다. 마치 홍삼을 먹고 난 뒤 엄마가 건네 준 사탕처럼 말이다.


버티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길. 우리 그러했으면 좋겠다.

버티는 지금도, 행복하길.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삶일 테니, 나 또한 행복해지고 있는 중인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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