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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29. 2019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고요한 산속 목탁 소리가 울린다. 절은 대게 속세와 단절된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5G 시대 대한민국에서 세상과 단절된 곳을 찾긴 어렵다. 산속 깊은 곳 스님도 오늘의 대기 상태를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된다.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검색"이란 일상이란 말로는 부족한, 삶 그 자체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는 현재 우리 삶에 크게 자리한 ‘검색’을 가능하게 하는  포털사이트, 그 안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여자들과 그녀들의 마음을 흔드는 남자들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검블유>는 김은숙 사단에 속해있는 권도은 작가의 첫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김은숙 작가의 극을 좋아한다. 유치한 듯 오글거리는 대사도 세련되게 전달해주는 캐릭터, 일상 속 흔한 소재에서 한 끗 다름을 보여주는 그녀의 필력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그녀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권도은 작가에게 그러한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조금 더 트렌디하게 연출된 첫 회부터 나의 기대는 완벽하게 충족되었다.




<검블유>는 현재 3.6%의 시청률을 보인다.(19.6.25 기준)

김은숙 작가의 전작인 <도깨비>, <미스터션샤인>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하지만 드라마 대사를 업로드하는 인스타 계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검블유> 반응은 상당히 뜨겁다. <검블유> 대사를 업로드하고 약 20일이 지난 지금까지, 팔로우 수가 500명가량 증가했다. 물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비한 수치일 수 있겠지만, 댓글과 좋아요 반응까지 높은 것으로 보아 뜨거운 게 맞다. 그건 아마도 드라마 속 주제가 우리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수십 번 포털사이트에 접속한다. 포털은 내가 남긴 흔적을 토대로 내게 맞는 정보를 제공한다. 어떠한 이슈가 생겼는지도 뉴스나 신문기사가 아닌 검색어 순위를 통해 안다. 대표되는 두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비교해가며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안다.


그래서 극 초반 검색어 조작과 이로 인해 열린 청문회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엊그제 뉴스에서 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 배우의 찌라시가 퍼지면서 자살을 시도하고, 한 개인의 신상이 털리면서 메신저 테러를 받는 장면도 사실 많이 접해본 소식이다. 하지만 이슈는 사회면으로 옮겨지는 순간 관심 밖이 된다. 진실 그리고 정황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에만 관심을 보인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삶의 한 부분이 된 포털사이트는 우리, 각 개인에 대해 너무 잘 알지만 우리는 포털에 대해 모른다. 배타미(임수정)과 송가경(전혜진)의 대립구도를 통해 포털사이트가 어떠한 논리와 정의로 움직이며, 어떻게 권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사실적인 소재는 뉴스를 통해 들었던 것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게 해 주었으며, 현실의 문제를 직,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면서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엔 캐릭터들이 갖는 매력이 큰 몫을 했다.

극 중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내가 스물 중반 막 사회에 나왔을 때 그려본 서른 후반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선망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진해져 버린 부러운 마음으로 드라마 속 인물들에 빠졌다.


특히 인스타에 올린 배타미(임수정)의 대사에 가장 많은 공감이 표시되었다.

물론 그녀가 주인공이기는 하나,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하기에 모르지 않고, ‘될 되로 돼라’ 하며 그냥 두기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 서른여덞이다. 그래서 그녀는 열정의 주인이 자신인 스물여덞 모건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다. 청춘을 다 받친 회사가 자신을 희생제물로 버릴 때도 울면서 가만있지 않았다. 경쟁사로 옮기면서 자신이 존경했던 선배, 송가경(전혜진)에게 도전장처럼 그들이 함께 작성한 포털사이트 윤리강령을 되짚어주고 나온다. 이직한 뒤에도 사사건건 차현(이다희)과 부딪히지만 그녀는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수용해나가며 변한다.


서른여덞의 그녀는 용기가 사라지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소위 말해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리다고 불려지던 때에  안정을 추구하는 태도에 대해 나이가 들어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그 나이쯤이 되자, ‘그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라고 치부해버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타미의 말처럼 그냥 세상을 알아버린 것 일지도. (물론 이게 나이가 든 거라고 한다면 할많하않) 나와 같은 마음이 다들 있어 그런지, 유독 그녀의 대사에 공감을 표시하고 친구들을 테그해 소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는 타미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스물여덞의 박모건(장기용)은 계약이 엎어져도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식으로 밀고 나간다. 두려움이 없다기 보단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그래서 포기는 없다. 열정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모건은 타미와 대조되어 젊음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그는 스스로도 타미에 비해 모르는 것도 많고 없는 것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모건의 행동은 자주 타미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부당하게 일에서 잘리게 되었을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가경을 찾아가 멋지게 단판을 짓는다. 어리다고, 을이라고 해서 기죽지 않았다. 잘못을 한건 자신이 아니라는 당당함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가 모르는 건 몰라도 되는 것이고, 없는 건 없어도 되는 것뿐. 핵심을 뚫어볼 줄 아는 모건은 나이 때문에, 또는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걸 따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을 밀어내는 타미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존심 상해하거나, 상처 받는 대신 그녀를 안심시켰다. 우리가 모건에게 반한 건 멋지고 잘생긴 얼굴도 사실이지만:) 열정 가득했을 때 가졌던 이 곧음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얼마나 큰 편견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왠지 모건이 나이가 들면 브라이언(권해효)을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은 바로의 대표이지만, 누구보다 퇴근을 갈망하고 휴가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직원들이 그가 대표란 사실을 잊는데, 그는 자신이 이 회사의 책임자란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는 대표로 회사에서 일어난 일에 책임을 졌다.


젊음을 다 받친 회사에서 버림받은 타미를 같이 일한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브라이언은 지켜주었다. 그는 마흔여덞, 타미보다 10년 먼저 살면서 깨우친 인생에 대해 스포 해주면서 그녀의 자리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지켜주었다. 물론 타미의 권리를 빼앗어야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나는 브라이언이 착한 역할뿐만 아니라 악역도 피하지 않고 결단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감동받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보단,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브라이언은 자신의 직분만을 생각하며 타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한 팀으로 그녀를 알아갔고 그래서 부당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서 타미 타미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차현을 불렀다. 이번에도 브라이언은 타미의 마음을 지켜주었다.


좋은 리더, 존경하는 선배의 모습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자리가 직분에 갇힌 사람 말고, 우리가 함께 팀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일 때 브라이언처럼 혜안 있는 행동을 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브라이언의 이러한 모습은 자연히 가경과 대비가 된다.

정의롭고 따뜻했던 가경이 바뀐 모습은 타미의 대사처럼 ‘눈뜨고 일어나면 내 자리가 없어지는 이러한 세상에서 합당하게 지켜지는 생존’이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물 타고, 협박하고, 분위기를 작업하는 가경은 좀처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부당함이 그녀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에. 사라지고 싶단 꿈을 꾸는 그녀가 정말로 사라져 버릴까 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계로 그렇게 도망갈까 봐 보는 내내 불안하다. 이 드라마에서도 완벽한 악인은 없다. 저마다의 상황을 보여주며 모든 캐릭터에게 마음을 갖게 한다. 개인적 취향에 대한 TMI지만 선과 악으로 구별될 수 없는 게 인간이기에, 이러한 드라마적 표현을 참 좋아한다.




가경의 위태로움을 볼 수록 나는 타미가 바로로 이직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물 중반 가경으로부터 일하는 법을 배웠다면 서른여덞의 그녀는 스물여덞의 모건을 보며 다시금 열정의 주인으로 자신을 삼고, 마흔여덞의 브라이언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매일 같이 차현(이다희)과 부딪히지만 타미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검열한다. 차현은 분노조절 장애가 있지만, 약한 사람의 편에 서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며, 이를 위해 능력을 키우는 사람이다. 그녀의 폭력? 에 우리가 사이다를 느끼는 이유일 테다. 부정적 이슈보다는 건강한 이슈를 만들려고 하는 바로에서 타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방식을 변화시켜간다.


마치 소신과 소신의 싸움처럼 보였다. 가경과 부딪히던 타미는 이제 차현과 부딪힌다. 살아온 삶으로 만들어지는 소신이 서로 부딪힌다.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력이라고 말하던 유니콘에 계속 있었더라면, 그녀는 성공이라는 등장 밑에서 너무 많은 걸 잃어갔을 것이다. 건강한 시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 줄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난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이 곳, 바로에서 진짜 달콤한 성취를 맞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고작 8회가 지났다.

바로가 업계 1위가 될지 보다, 타미와 모건의 사랑보다

차현과 설지환(이재욱)이 보여줄 이야기가 조금 더 궁금하고

가경이 어떻게 유니콘을 지킬지가 많이 궁금하다.


부디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내 삶에 건강한 소신을 세워나가는 일들이 더 생기길 기대하며 나의 마흔 넘어를 그려본다.





# 대사 양이 많아, 남은 대사 캘리는 추가 포스팅은 대사별 코멘트를 달아 올릴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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