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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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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는 대사를 짧은 코멘트와 올립니다.




그녀는 청문회에서 회사가 정해준 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비록 물 타고, 협박하는 스킬을 사용하지만 그녀 나름의 소신이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것. 그녀가 청문회에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거짓말로 둘러되지 않은 건 소신 때문이자, 회사가 원하는 대로 희생양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도 있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녀는 청문회 영웅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정의를 추구하고 대단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살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일을 하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어디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살고 싶은 일차적인 반응에 순응하며 사는 것 분이다. 쿨하다, 걸크러쉬하다 하지만 그녀는 청문회 다음 날 내일이 두려워 대교 위에 올라섰다. 두려웠고 무서웠고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해가 뜨자 그녀는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그게 우리 모습이다. 뭔가 거창한 정의감 같이 있어야 삶일까? 두렵고 겁이 나지만 삶을 살아내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거창한 일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거창한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고, 현실의 맥을 있는 그대로 짚어 가감 없이 전하는 장면에서 찡하고 애틋해졌다. 타미가 그리고 내 삶이.




박모건 덕통 사고의 시작점.

나이가 들면 용기는 사라지고 안정만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어리다고 불려지던 때에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안정을 추구하는 그 나이쯤이 되자,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그저’ 나이를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타미의 말처럼 세상을 조금 알아버린 것 일지도. 에라 모르겠다 하기엔 모르지 않고, 될 대로 돼라 하기엔 정말 어떻게 되는지 이젠 아니까. 다만 나이나 경험을 떠나서, 열정의 주인이 사랑인 적이 없어서.. 그건 좀 부럽 >_<

열정의 주인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타미에게, 스물여덞 살 모건은 자신의 열정은 사랑이 주인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고 사랑 모두에 열정적일 수 있는 건 단순히 10살 어린 젊은 혹은 좀 더 넉넉한 열정의 양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걸 하는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어리다고 생각이 없지 않다. 그건 정말 편견이다. 그녀가 그를 통해 분명 한 뼘 더 자라겠지.



이름을 묻고, 불러주면서 관계는 시작된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그런 의미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그리고 더 나아가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건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타미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안 모건이,  그냥 지나가기에 “너무 많이 알아 우리”라고 말했듯이.

타미와 모건, 차현과 지환의 시작이 닮았다.

하루 만에 타미는 검색어 10위에서 밀려났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어쩌면 타미의 상처는 그 날로부터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작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는 나도 악플이 달린 적이 있다.  그 당시 문 밖에 나가기조차 힘든 공포를 느꼈고 지금도 가끔 되살아난다.

타미의 말처럼 계란을 맞는 사람과 던지는 사람이 위치가 고정되지 않다. 사실과 정황의 파악이 무시된 이 처참한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억울한 일은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세상에, 사랑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그녀만의 공간에 홀로 있을 때, 모건의 전화가 온다. 그리고 모건이 나타날 때, 1화에서 모건이 타미에게 들려준 게임 음악이 흐른다.

“천년을 사랑했던 여자가 성 안에 갇혀있는 거예요. 적은 딱 한 명 남아 있어요. 이 마지막 전투만 이기면 성 안에 있는 여자를 구할 수 있어요.”

긴 외로움에 갇힌 타미를 모건이 구하러 온 듯이 보였다.



‘남 탓’이라고 표현됐지만, 나는 이 대사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들렸다. 근원적인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하기엔 너무 큰 존재이거나 상황일 때가 많다. 그래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 탓을 했다. 그게 맘 편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죄 없는 내 자신은 죽어가고, 책임을 져야 할 존재들은 평안했다.


타미처럼, 브라이언처럼, 한 걸음에 달려와준 차현처럼 그저 내 입장에서 할 일을 하면 되었을 텐데, 너무 멀리 생각하느냐 지쳐 내 탓만 했던 내 자신이 불쌍했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오진우(지승현)는 송가경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를 지키려고 했지만 , 그녀라면 하지 않을 방법을 선택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이 중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사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사랑은 작았고, 송가경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업무 파트너였던 타미보다 못했다. 누군가를 배려할 필요가 없었던 오진우의 부유한 삶은 무조건적인 축복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사랑도, 사과도 받을 수 없는 삶이 돼버릴 것인가?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생기는 나의 유치한 바람은  드라마가 끝날 때 모든 배역이 이전보다 나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는 것. 오진우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장면에서 명품백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는 진지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라는 유니콘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공부를 못해 좋은 스펙이 없고, 말은 직설적이라 자꾸 면접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타미는 일이 있을 때마다 트렌드에 밝고 센스가 좋은 아라의 피드백을 참고했다. 채용 시장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오래 보고 결정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


하지만 업계 1위의 웹툰 작가가 자신의 명성을 이유로 신입사원이 아라를 무시할 권리는 없다.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도 이와 같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가진 게 조금 더 많다면 쉽게 무시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아라를 타미는 스카우트한다. 타미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세상은 그런 눈이 없고 물론 그런 눈을 장착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에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아라에겐 명품백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아라가 받은 명품백은 눈에 보이는 스펙을 대신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타미가 명품백 준건 기회를 준거라고도 보였다. 사실 신입에게 업계 1위를 스카우트하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런데 타미는 아라의 업무 감을 믿어주고, 완벽한 서포트를 해준다. 내가 서른여덞이 되었을 때 과연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마흔, 쉰의 삶에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점 점 더 사과하는 어른이 나고 세상이 바뀌어 나갈 수 있길. 나 또한 더 나아지길.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가 생각났다.

일상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일차적 선곡이지만, 나의 일상으로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그의 가삿말처럼 내 세상으로 초대한다는 의미 일터.

타미가 두려워하는 건 앞 전 대사처럼, 자신이 사랑 때문에 어리고 철 없어질까 봐. 모든 걸 던져놓고 사랑에 열정을 쏟을까 봐. 그렇게 박모 건에게 빠질까 두려워 그녀의 현재,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지금의 일상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른다. 나는 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고, 그래서 타미를 안정시키는 모건이 더 사랑스러웠다.



내가 나여서 싫은 날, 그런 나를 다행으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어떠한 행복일까.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행복한 일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사랑한다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녀는 자신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매일이 경쟁인 그녀는 이러한 일상이 차라리 평온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처럼 사랑이 완성이 결혼이냐, 아니다도 난제 중에 난제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적어도 좀 더 살아왔다는 내 경험으로 상대의 마음을 단정 짓진 말지. 사랑뿐 아니라 일에서도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실 두려운 거라고, 감정을 속이지 않고 그리움을 남길 후회되는 행동을 바보 같이 반복하지 않길, 다짐해봤다.





결국 타미의 일상에 모건 입성. 우선 지금. 함께할 나중이 되겠지.


타미의 방법이 바뀌었다. 더 나은 방법으로 이겨주겠다는 타미가 멋있었다.

그리고 악역을 다 자처해서 욕을 먹으면서도 시댁을 향해 더 이상 개가 되지 않겠다는, 가경의 꿈이 부디 멋진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냥 사라져버리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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