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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19. 2019

불랙미러_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요즘 재미나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포털사이트 회사를 배경으로 일과 로맨스를 그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tvn/극복 권도은/연출 정지현, 권영일)이다.


드라마는 청문회 장면으로 시작된다. 1위 포털사이트 '유니콘'은 검색어를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면서 청문회가 열리고, 증인으로 유니콘 서비스 전략 본부장 배타미가 소환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검색어'와 ‘실시간 검색어 순위’의 필요악이 주 소재로 등장한다.


배타미는 청문회 자리에서 유니콘은 검색어를 조작한다고 답하며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이 보시는 실시간 검색어는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검색을 하기 위해 키보드 앞에 앉은 사람들의 손가락 그것뿐입니다. 제가 10년간 검색본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삭제한 단어가 뭔지 아십니까? 섹스, 포르노, 19금, 노출, 음란물 사이트 등 성관련 검색어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최팀장에게 평소 '검색창'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진실해지거든”


사람들이 검색창 앞에서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안에 숨겨진 욕망이 튀어나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칼은 대니의 서른여덟 번째 생일 파티에 초대되면서 오랜만에 재회한다. 11년 전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게임을 즐겼다. 칼은 대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새롭게 출시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X’ VR 게임기를 선물한다.


어느 밤, 무료하게 테트리스를 하던 대니에게 칼의 게임 초대가 온다. 과거처럼 자신이 사용하던 캐릭터를 선택하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관자놀이에 붙인 기계가 이들을 게임 속 결투장으로 소환시켜 주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격하게 움직여도 매 라운드가 끝나면 원래의 체력으로 돌아온다. 대니의 수술한 무릎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칼은 대니에게 말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이들은 오로지 게임 속에'만' 존재한다. 이는 게임이 접속되는 장면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정신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연출.


그렇게 시작된 격투는 게임 ‘안’에서만 이뤄진다. 게임 밖 현실에 놓인 몸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타격감에 일시적으로 몸이 움찔거릴 뿐, 몸에는 요즘 말로 영혼이 없다. 


때문에 곁에 누가 와도, 그래서 말을 건네어도  알 수 없다. 물이 마시고 싶던 대니의 어린 아들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빠를 발로 찼던 건지도 모른다.


몇 번의 게임을 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대니의 아내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들은 게임이 시작되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접속 화면을 나타내던 TV 스크린에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로고만이 뜬다. 게임 속에서 어떻게 격투가 이뤄지고 있는지, 누가 이기고 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블랙 미러’처럼. 게임밖에 있는, 우리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 게임의 당사자인 나와 너만이 알 수 있는 곳. 이들은 그 안에서 서서히 게임이 아닌 다른 유혹에 빠지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이들이 게임이 아닌 다른 유혹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사람들이 검색창 앞에서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안에 숨겨진 욕망이 튀어나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를 물었다.


내가 생각한 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에 연루되지 않는 한, 스마트폰은 개인의 사적 공간의 의미로 보호받는다. 작지만 많은 것이 가능한 이 스마트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만 알 수 있다. 옆 사람에게 묻자니 '그것도 모르냐'고 무시당할 것 같은  질문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지만, 어디다 말하고 묻기 부끄러운 성관련 질문도 검색창은 다 받아주니, 창피해 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어떤 사람들은 이 곳에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까지 묻고 있다. 


아마 검색창의 처음 의도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공간, 스마트폰 속 검색창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개발 의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게임 속에서 격투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격투용 오락 게임으로만 생각하고 개발하였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은 각기 너무 다르고, 그래서 변수가 생긴다. 이 부분이 기계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로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어두운 면으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미래의 첨단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실현해 주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두운 상상력으로 풀어낸  SF시리즈”라는 <블랙 미러>에 대한 설명에 이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에피소드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다 쓰고 나서 포털사이트에 저장된 나의 검색어 목록을 보았다.  현재 내 관심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점점 개인의 공간이 굳어지는 기술 속에서 우린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


기술의 발전이 건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은밀한 유혹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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