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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16. 2019

블랙미러_스미더린


#내용 중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남자가 소셜미디어 '스미더린'에 근무하는 직원을 납치했다. 그의 요구는 ‘스미더린’의 설립자 빌리 바우던과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다.


이에 경찰, 협상가, FBI는 물론

설립자를 대신해 경영을 맡고 있는 페넬로페 우예와 그녀의 직원들도 납치의 목적이 돈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그들이 ‘스미더린’ 사이트와 경찰 시스템으로 찾아낸 정보에 근거를 두었다. 하지만 협상가의 시도는 실패했고, 오랜 실랑이 끝에 납치범은 빌리 바우던과 통화를 하게 된다.





통화를 하기까지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장면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우리는 손안에 작은 세계, 스마트폰과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다. 현장에 있는 시민들은 소통을 이유로 경찰과 납치범 사이의 이야기를 자신의 피드로 옮긴다. 그 자리엔 분명 언론매체도 있었지만, 납치범 조차 ‘스미더린’ 피드를 통해 외부 상황을 접한다.


그래서 빌리 바우던이 납치범과 통화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연결하면서 시작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그는 자신을 돕는 직원에게 메모를 부탁하다 이내 곧 이름을 묻는다.


"미안, 이름이 뭐지?"

"티피입니다."

"반가워 난 빌리야"


내가 애정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름을 묻는다는 건 기본적인 예의이자 상대와 내가 지금,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중의 제스처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알면 우린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 빌리는 이런 모습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은 아닐까?





어렵게 통화를 시작한 빌리는 납치범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 이에 납치범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요구를 한다. 묵묵히 납치범의 이야기를 듣던 빌리는 회사가 보낸 심리 연구팀의 대응 전략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제안은 무용지물이 된다. 납치범이 원한 건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돈이 아니었다. 그들의 잘난 데이터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결국 빌리는 어쭙잖은 조언이나 머리 굴린 인위적인 공감이 아닌, 솔직한 자세로 납치범과의 대화에 집중한다.



납치범은 자신의 상황을 SNS에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질극을 펼쳐가면서까지 빌리와 통화를 하기 원한 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던져 놓고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리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얼굴을 보고 그래서 표정에 드러난 감정까지 모두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목소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상황을 진실되게 전할 수 있도록 통화를 원한 것이다.


빌리가 '스미더린'을 만든 초창기 목적도 이에 닿았을 것이다. 진심을 담은 소통. 그는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묻는 사람이자, 진심으로 대화의 자리에 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스미더린'이 성장하면서 초심을 잃었다. 어쩌면 최고 경영자가 들어서면서 그들은 소통보다 이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눈을 뗄 수 없게끔, 다른 경쟁사가 아닌 '스미더린' 안에만 머물도록 벗어나지 못할 시스템을 구축했을 것이다. 모두가 중독되도록.


소통을 말하지만 우린 피드 안에 머물 뿐,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다. 상대방의 액정에서 내 글은 얼마만큼 생명력 있게 전달될까? '좋아요'가 눌린 수만큼 내 글이 읽혔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나조차 긴 길은 빠르게 내리면서 두 번의 터치로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이런 기대를 한다.


매일 수많은 유저들과 소통을 하면서도 우린 아이러니하게도 진실된 소통을 원하고 있다. 연인이 문자로 헤어지자고 말하면 예의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문자로 해고를 알려도 비슷하다. 불쾌한 기분이 들고 부당한 '통보'라고 여긴다.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 원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매 초마다 일어나는 일을 공유할 수 있어도, 모든 자료를 갖고서도 전문가들이 납치범의 마음을 읽지 못했듯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블랙미러가 후, 나타난 장면은 내게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작은 스마트 폰 세계에 먼저 시선을 둔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내가 스마트폰 알람부터 살피는 것처럼. 하지만 빌리가 묵언 수행을 이어나가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눈을 뜨면 '스미더린'에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그가 진정한 소통, 진심에 대해 고민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며 시작될 일을 말이다. 이 기대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거란 순진한 기대가 아니다. 어쩌면 빌리가 아닌, 납치범 곁에 있었던 인질이 더 많은 것을 느꼈을지도. 나는 우리가 서로 기대어 맞닿아 서는 사람(人)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마음, 구태 의연해 보이는 ‘진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향한 기대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조금 더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김금희 작가의 표현처럼 SNS라는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  사진들처럼 그들이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 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있지 않은지, 직접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중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중)


이러한 마음들을 지켜질 때 작은 화면을 뚫고 주변을 풍요롭게 하는 소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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