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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07. 2019

봄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장 사랑하는 계절을 뽑으라면 단연코 봄이다.

겨울 생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추위에 약하다.

시리게 추운 겨울을 보낼 때면 봄이 오긴 오려나,

긴 긴 겨울밤을 따뜻한 봄만 생각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버틴다.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 듯, 풀어지는 봄 밤을 정인이 맞이했다.

'사랑이 별 거 있을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모험을 즐기지 않는 그녀는 아마 이런 류의 생각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오래 만난 기석과 결혼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의 결혼 이야기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 상 조금 더 따져봐야 했겠지만 오래된 연인이 갖는 권태로움 정도로 여겼다. 헤어진다는 건 그녀의 머릿속에도 없던 것 같다. 달리 다른 게 없으니, 사는 게 다 그러할 테니.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그보다는 피하려고 했다고, 그녀가 말했다시피.

 




 

하지만 그건 지호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상처 받고, 어쩌면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있던 지호의 밤에 정인이라는 봄이 찾아왔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잎이 쏟아져 내리면 어디로도 피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둘은 예상치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놓아져 버렸다.


왜 하필 지금일까?

영주의 말처럼 지호를 향한 정인의 마음은 '억울해도 배신인 상황'이다.

왜 하필 지금일까?

몰랐던 사람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작은 감정 하나 들킬까, 마주치는 눈빛 조차 조심스러웠던 둘의 모습은 안판석 연출의 전작 <밀회>를 떠오르게 한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사단이 만든 <봄밤>

남자 주인공과 OST 가수마저 같아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작보다 더 좋은 반응이다. 나부터도 전작은 초반 3회가량 보고 돌아섰지만 지금은 수목 9시, 그 낯선 시간의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전작의 불편했던 내용은 빼고, 일상의 소음, 신발을 벗는 장면까지도 주인공들의 감정선으로 이끄는 안판석의 감각적인 연출이 제대로 빛을 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을 느끼는 일이 버거워지고, 사랑, 그래 사랑은 하고 싶지만 어떻게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손해 보는 것 밖에 없는 이 비효율적인 일을 구태어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이러한 생각으로 기울어지는 세상 속에 나도 흘러가듯 흘러가버릴까 생각이 들었다. 정인만큼 자신의 감정 하나만큼은 확실히 하자 주의이기에.


하지만 이들처럼 다신 없을 감정이 찾아오고 자신도 느껴보지 못 한 감정이 들 수도 있지 않은가?

온전히 마음 접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여직,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고 배려가 느껴져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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