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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30. 2019

멜로가 체질: 대사편 1

스왑주의.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는 대사를 짧은 코멘트와 올립니다.


착하다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손해보고 당하는 어리석음으로 들린다. 그래서 이 악물고 못되져 봤는데 마음이 불편해지더라.

못되게 굴 것이 아니라 지혜로워지면 되는 일이란 걸 그땐 몰랐다. 착함을 잃지 않는 것, 보통을 유지한다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장범준의 또 다른 연금송이 될 것만 같은 제목마저도 너무 멜로가체질스러운.

"흔들리는 꽃들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멜로가체질OST


지난 주 마지막 범수 대사가 이번 주 진주의 연애사와 이어졌다. .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고집이 들켰다. 사랑이었다고 말하기엔 상처로 남은 우리의 과거가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길 바랬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사랑이 변했다는 사실로인해 우리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것 일지도. .

그와의 추억은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되어 끝난다. 그러니 미련이 남았다면 당신이 아닌 그 시절 예쁘고 순수했던 나에 대한 미련이고 그리움이라는 생각.


사실 그렇게 깊게까지 가져보진  했다. 이별에 대한 시각 마저도 하나씩 꼬았다. 상대에게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나로 향하게 했다. 그게 맞을  . 그렇게해야 정리가   같다.


오랜 연애의 끝 마저도 주체적이라 시원시원하네.

1. 꽃길은 사실 비포장 도로였다.

2. 재수없고싶다.

에 이어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삶의 문장.

3. 유치하게 살고 싶다. 성공하면 확 바뀔거야. 유치하고 건방지게. .

.

진주 선생님 롤모델로 삼아도 될까요? .

.


피티할 때 범수는 말을 더듬고 준비한 내용은 뛰어넘고 화면에서 빠진 단어나 말하는 등 엉성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너무 좋은 작품인데 그 매력을 몰라주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들의 수준에 맞게 꾸며야하는 말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한결 같은 사람이다. 어쩌다 범수네 집에서 진주가 자고 가게된 날, 대접받았는데 설겆이라도하고 가야하는거 아니냐는 진주의 농담에 “여자가 무슨 설겆이야, 내가해 내가해” 했던 그다. 어색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는, 거짓말, 빈말을 못 하는 사람이며, 할 말은 돌려까는 법이 없는 시간 관념이 투철한 한결스런 사람이다.


그래서 자주 얄밉고 잘났고 재수없지만 그만큼 진지하고 책임감있고 실력도 있다. 일회 한번씩 박력 터져주시네!


굳이 유연함을 따진다면, 그건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요구되어야  자질이다.  뻣뻣할  밖에 없다. 긴장과 낯설음 그리고 적은 경험이 굳어지게 만든다. 그러니 경험과 익숙함이 많은 존재들이 먼저  유연해질  없나.

세상은 한주나 재훈 같은 사람을 바보처럼 본다. 잘 웃고 선한 마음으로 일과 사람을 대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


그래서 한주의 전남편은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한주를 사랑했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한주를 떠났다. 재훈의 여자친구는 자신을 가엽게 여기며 사랑하는 재훈의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이 돌아오고 싶을 때만 그를 찾았다. .


그럼에도 한주는 전남편을 욕하지 않았다. 홀로 우는 시간도 있었지만 더 많이 웃었고, 씩씩하게 아이를 키워가고 있다. 재훈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욕먹지 않게, 그리고 한주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게 거짓말을 했다.


이 둘은 닮았다. 무례한 상황에서도 욕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이용하고 괴롭히려는 세상에 선하게 대하려고 한다. 과연 이 둘을 나약하다고 볼 수 있을까?


회사가서 짜증내지말고 선한 마음으로 일해야지 기도하고 출근해도, 일이 하나 틀어지면 육두문자가 먼저나오는 나로써 한주와 재훈은 굉장히 큰 사람들이다. 절대 작고 약해 보이지 않는다. .


이 둘이 원했던건 딱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 때 안아주는 것. 그러나 재훈의 여자친구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고 한주는 그런 재훈을 안아주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이 둘은 절대 강한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케미.

어쩌다 앙숙이 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된 과거다. 그러니 다시 만난 둘 사이 케케묵은 감정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


다만 무시했을 . 오래전 이야기도, 지금의 소민이도. 조울증 같아 보이고 해맑고 머리 나쁜 소민이로 무시했다. 그에 반해 나는 똑똑했으니까. . 은정은 알고있을까? 자신의 정확한 상태를? 포기를 잘한다고 하기엔 아직 홍대를 놓아주지  하고 있다. 아니 그렇기에 포기가 쉽지 않은 일이란걸 아는 걸까 ?.


맞다. 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포기는 자신이    선택을 했다거나, (여러 모양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작가처럼 자존심만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창피함을 알아, 소민의 매니저 민준과 허상이라도 홍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


그리고 소민을 다시 본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간다. 왠지 은정이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데 진주와 한주만큼 악연이라 여겼던 소민의 도움도 받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목표가 있거나, 불투명하거나 때론 없거나 모든 상황에서 우린 노력을 강요 받으며 살고 있다. 세상에 당연한건 없다 주의인데 노력만큼은 예외란 생각이 들정도로, 삶에 노력은 너무 필수다..


지난 4-5회를 보면서 여러 대사와 장면이 노력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주의 노력은 정작가와 나이든 분들 앞에 막혔고, 은정의 다큐는 너무나 정상이어서 괴로운 소민의 정신세계에 막혔으며, 한주는 여전히 삶이 고군분투다.


드라마 <상속자들>을 다시보는데, 이 대사에 꽃혔다." 난 딱 지금보다 십원원치 나은 삶을 살기 바래." 그런데, 그 십원원치 나은 삶을 위해 백원, 천원이 아닌 백만원, 천만원치 노력을 기울일 때가 있다. 그럼 밑지는 장사 아닌가.


이 장면은 중간에 다른 캐릭터의 스토리로 넘어갔다 다시 돌아온다. 같이 올리면 좋은데 대사를 아무리 추려도 10장이 넘어가서 따로 올릴 예정이지만, 코멘트는 이어가려한다.


아무것도 안해보기. 이 또한 일종의 노력이란걸 진주를 통해 또 배웠다. 매 코멘트에 등장하는 표현이 진부하지만 이렇게 또 한번 일반적인 행동을 이감독은 꼬았다. 오늘은 이 비튼 시선이 자유함을 주었다.


노력도 당연한게 아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처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라, 노력하는 당신의 수고가 귀하다는 말이다. 당장 아무런 결과가 없어보여도 노력하고, 아무것도 안함으로 버텨도 보는 사이 진주는 제작사를 만났고, 한주는 신인 작가의 대본으로 제작 기회를 얻었으며, 은정은 다큐에 들어갈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다.


노력이 성공을 만든게 아니라, 노력 한 이들이 만든 기회다. 노력에 집착해서 이를 행하는 나와 이를 위한 목표가 변질 되지 않길, 가끔은 노력하는 당신을 위해 쉬는 노력도 기울여봤으면 싶다. .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수고한 당신을 위해 쉬는 노력에도 열심을 내보자. .

쉬다가 누군가 정이 들어버릴지도 모르자나. 다정한 사람� 범수씌 훅 치고 들어오지말아요. .


실제로 검색해봤다. 애교란 단어를.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검색하면 어떤 단어가 나온다. 그 단어를 반대로 검색하면 애교란 단어가 아닌, 사랑스럽게, 귀여운 혹은 우스은 이란 뜻으로 나온다. 예리한 감독님 �


정당한 계약 조건을 개인의 감정이나 상황으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말도 안되는 행위를 당당히 요구하는 저 멍청함은 뭘까?  오빠라고 부르는게 어렵냐는 어떤 이의 무례함을 본 적이 있다. 애교는 능동이지 수동이 아니라는 인친의 댓글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니 애교가 없어 라는 말이나 애교를 강요하는 것 모두 예의가 아니다. 애교는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니까.(인친 댓글 인용) 즉, 오빠라고 부르는게 어렵지 않다. 그저 당신에게 그 호칭이 아까울 뿐. .

.

아저씨는 원빈이고, 돈이 많으면 언니, 잘생기면 오빠라며 우스운 농담이 있다. 호칭의 정의가 바뀐거라고 말 할 순 없지만, 나는 이 농담이 예사롭지 않다. 농담으로 밖에 말 할 수 없는 배경이 있었던건 아닐까? 왜 좋은 의미의 단어를 입밖으로 내 뱉는 것 조차 기분 나쁘게 바꿔버릴까? ..


당신에게 존중의 의미로 불려지는 감독님, 배우님이란 호칭이 있음을 감사히 여겨야 하는데,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맥을 못 잡는다. 아, 델루나에서 만월이 찬성이를 미래의 언니로 부르던 장면이 생각나네.


그들에게 오빠지옥을 선물한 똑똑이들. 불쾌할 수 있는 장면을 오빠지옥으로 유쾌하게 풀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정색하며 “고마워요. 오빠”하는 한주의 대사에서 웃자고 던지는게 아니라는 감독의 뜻이 다가왔다. 감독님 멋져요� 몇 번을 다시 보기했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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