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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21. 2019

멜로가 체질

사는 게 뭘까?

물어오는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들은 소중한 걸 일을 뻔했고 그래서 아주 작은 행복에도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삶을 감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자세지만,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을 피해가게 하는 문제도 있었다. 좋았던 기억을 약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게 산다는 건가?


주인공의 질문은 내 삶까지 함께 고민하게 했다. 기쁘고 만족스러운 성취의 순간은 짧고, 대부분은 그 시간을 위해 힘드니까.


심각하게 이어간 고민은 건강한 라면이 개발되길 바라는 바람으로 끝이 났다. 야심한 시각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곧 배가 고파지기 마련. 이들도 그랬고 라면을 먹을래, 말래. 몇 개를 끓일까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참고로 이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다이어트를 다짐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듯하다. 어제 내가 나눈 친구와의 대화 흐름과 비슷하다고 (우리 대화가 그렇지 뭐:).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툭 다른 이슈로 튀어 의식의 흐름대로 떠드는 수다!


천우희와 안재홍, 공명을 제외하면 내겐 낯선 배우들이다. 친숙하지 않은 얼굴이, 의식대로 흘러가는 우리네 같은 대화와 함께 평범한 일상의 심리를 부각했다. 연출과 극본 모두, 영화 <스물>, <극한직업>으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이 맡았다.


집순이인 나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 모두가 열광하던 영화 <극한직업>도 여름휴가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간신히 봤다.  영화 <스물>도 김우빈 배우 때문에 봤는데, 영화보다 드라마인 내가 한 감독의 영화를 두 개나 봤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 이병헌 감독의 작품이 드라마로 나온다는 하반기 라인업 소식을 듣고 첫방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1화의 시작부터 웃었고 공감했다가 1화 끝엔 코 끝이 찡해지다 또 웃었다.


인스타그램 드라마 계정에 1화 대사를 업로드 하자, 무슨 드라마인지 흥미 있다는 댓글이 달렸고 추천하겠냐는 물음에 3회 첫 씬에 나온 천우희와 안재홍의 대사를 올림으로 추천 이유를 대신했다.



티키타카의 정수:)

대사의 호흡이 좋은 대본은 꽤 많다. 대표적으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내게 그렇다. 축구 패스처럼 탁, 탁 받아치는 대사를 볼 때면 어떻게 저렇게 쓸까 싶었는데, 이병헌 작가의 호흡에는 코믹이 더해져 있어 더욱 감탄했다. 무엇보다 저급한 농담이 아니었다. 웃다 보면 허탈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멜로가 체질>은 웃음 속에 허를 찌르는 통찰력이 있어 오히려 극에 집중을 높였다.


신인작가를 섭외하러 온 잘 나가는 스타 감독 범수(안재홍 분)는 성심성의껏 신인작가 진주(천우희 분)의 대본을 까는 장면이 나온다. 참 얄밉다. 말가 심한 게 아니냐면서 진주는 범수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한다. 역지사지. 이 훌륭한 생각을 자신의 입장이 훨씬 더 좋은데 왜 바꿔 생각해야 하냐며,  범수는 가볍게 뒤집는다. 생각해 보면 범수의 말이 틀리지 않는데, 얄밉다. 얄미운 소리를 서슴없이 한다.


'재수 없음은 잘 나가는 자의 본연의 재수 없음인가, 잘 나가지 못한 내 시선이 만들어낸 가짜 재수 없음인가.'

이어서 생각하는 진주의 속마음은 공감되면서도 여러 생각들로 꼬리를 물게 한다. 



대 작가 밑에서 일하게 된 진주는 대기업 입사처럼 취직 사실을 행복해하며 앞으로 꽃길만 걸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상상에 머물 때 더 아름다운 순간도 있다. 그런 현실을 꽃 길은 비포장도로였다는 비유로 말할 때 '아 나 이 대사 자주 떠오를 것 같아' 싶었고, 예상대로 <멜로가 체질>에서 나의 최애대사가 되었다. 


대체로 대사가 이렇다. 웃고는 있는데 어쩐지 씁쓸해지지만 또다시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버린다. 드라마 한 편 즐겁게 봤을 뿐인데, 이따금 삶의 현장에서 장면이 대사가 생각났다. 범수가 한 대사로 맞받아 치고 싶은데 현실은 천우희였다거나, 내가 처해 있는 나이 든 현실의 빡빡함을 일깨웠다거나 등등.


이해와 믿음을 달라고 했는데 자꾸만 다른 걸 주던 사람. 그는 자신이 주는 게 사랑이라고 했고, 바라고 나누던 사랑이 달라하니 헤어지자던 한주(한지은 분)의 이야기는 지난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니 웃기기만 하지 않다. 어쩌면 무거운 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의 웃음을 가져야만 했을 수도.



멜로와 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세 명의 여자 이야기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인생은 계속 달달하지만도 않고 계속 씁쓸하지만도 않다. 사실은 웃다가 슬프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다가 또 진지해지는, 내게 감정 조절 장애가 있나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게 인생이다. 이 드라마가 참 현실 같다고 평가받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의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간다. 각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깊은 상실과 상처가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며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돕는다. 따뜻한 위로가 흐른다. 그래서 웃음이 가볍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 그렇다. 불안해하면서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16부 마지막까지 이 웃음을 잃지 않고 현실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주옥같은 대사들과 함께. 결국 그 끝엔 웃어버릴 수 있도록.






 1~4회 대사 업로드입니다.

대사 분량이 길어지면 대사 편을 따로 만들게요:)

너무 슬픈 나레이션
얄밉게 말하다 이렇게 진지해져 버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실력도 있고. 당당한 범수씨가 부러웠다.
나도 자주 생각했던 ‘왜요?’
‘싫습니다’ 라는 글에 인사이트 점이었던 대사



정신분열, 나인줄


느닷없이 시작된 햄버거집에서의 열띤 강연. 일명 ‘여자사람에 대한 설명’ 대사는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워버려도 좋을 !
전 여친이 작사한 곡으로 범수씨 놀리는 우희. 웃다 또 이렇게 진지해져서 지난 사랑을 말하면 할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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