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무기징역수'¹라는 단어를 만났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동훈(이선균)은 세 형제 중 둘째였지만 장남이나 다름없는 무게를 지고 살았다. 후배가 대표이사가 되면서 안전진단팀으로 좌천되었지만 그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역할 모두에 성실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삶은 생기를 잃어가는 듯했다. 허탈한 짧은 웃음과 지친 한숨만 있을 뿐. 억지로 힘을 끌어 모아 올린 듯한 두 입고리는 웃는 얼굴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슬퍼 보였다.
지안(이지은)은 그에게 월 오육백을 벌어도 사는 게 지겨워 보이는 '성실한 무기징역수' 같다고 했다. 사실 그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가 감당하기 버거운 삶을 살면서도 할머니까지 부양하는 지은이는 비록 부적절한 방법을 선택하곤 했지만, 성실했다. 그런 삶이 성실이 갖는 버거움을 알게 했고, 그래서 같은 처지인 동훈을 단번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희망 없는 무기징역수에게 성실함은 어떤 의미일까? 지안의 말은 나까지 뜨끔하게 만들었다.
'성실함'은 분명 큰 미덕인데,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정성스럽고 참된' 성실은 좀 촌스러워 보이나 보다. 내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물어오는 걸 보면. 그런 질문을 들을 때 나는 동훈이 떠오른다. 나는 정녕 그와 닮은 것일까?
그러면서도 세상은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언의 기대를 건다. 노력이 빚어낸 성공 신화, 의협심 같은 것.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 행동한 것뿐인데, 그 모습을 '착실하다' 칭하고 제 멋대로 기대를 건다. 안타까운 건 몹쓸 성실함이 이 때도 작동되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 든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착한 딸’이란 역할에 성실했다.
몸이 아픈 엄마를 돕던 고사리 같은 손을 사람들이 착하다, 착하다 말해주니 그 말에 갇혀버렸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가서 엄마를 살폈고, 저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도왔다. 엄마가 아프면 나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했다. 공부를 못 하니 말이라도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소하게는 삼시 세 끼를 먹는 일에도 성실했다. 잦은 소화불량과 역류성 식도염을 앓아도 한 끼를 안 굶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차라리 한 두 끼 굶는 게 도움이 될 거라며, 그래도 안 죽는다고 금식을 권하셨다. 한번 생긴 루틴은 좀처럼 깨지 못하는 지긋지긋한 성실함이다.
하지 말라는 말도 잘 듣고, 하라는 것도 잘한다. 다만 가끔 속에 청개구리가 들어앉아 문제다. 하지 말라는 걸 하지 않으려다 스트레스로 증상이 더 심해지기도 했다. 버겁다고 느껴도 나는 ‘성실’이란 틀 안에 갇혀 있었다. 그 밖으로 벗어나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즐겁지 못했다. 많은 걸 해내고 있었지만 불평과 불만이 쌓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사냐는 말이 질책처럼 들렸고, 촌스럽고 손해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등 떠밀려 가는 삶에도 성실한 게 가장 싫었다. 당시 내게 '성실함'은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이었다.
동훈도 주변의 기대에 따라 임원 후보로 나섰고, 마침내 이사가 된다. 하지만 그 자리는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압박 없이 정직하게 일하고, 유능한 팀원들이 대우받길 원했다. 무엇보다 어른 하나 잘 못 만나 힘겨운 인생을 살던 지안과 광일 그리고 기범이에게 연락할 수 있는 '아저씨'가 되어 주고 싶었다.
마지막 회를 보면 모든 주인공들이 밝은 대낮에 사람 많은 거리에 서 있다. 어둠 속 달빛 하나에 의지하던 종 전의 장면들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어디로 가야 하는 알고 걷는 모습 속에선 무기징역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둡고 감정 선이 무거운 이 드라마를 나는 종종 다시 본다. 그리고 내가 가진 성실에 대해 생각한다.
밝은 햇살 아래를 걷던 그들처럼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닌, 나의 바람과 원함이 담긴 성실한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내게 성실이란 꽤 멋진 삶의 자세가 있음에 자부심을 품고 살 수 있도록.
¹.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