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참고, 참으면 뭐가 남을까?
악과 깡으로 버텼다는 어린 후배가 그래서 자신에게 남은 게 이제 악 밖에 없다고 말할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후배에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하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삶은 예민해도 자신에게는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참는 행위가 주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 과연 이 길이 맞는 건가? 더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이 들 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염려스러울 때 그리고 후배처럼 결과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나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는 조금만 더 참고 버텨보라고 했다.
적고 나니 모든 순간을 참고 버티라고 하는 것 같은데... 레슬링처럼 버티기 한 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적이 있고, 야구도 구 회 말 투아웃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끝은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텨 결판을 지은 적도 있었다. 이렇듯 인생에서 버텨서 얻어낸 경험이 내게 참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허나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했다.
후배의 쓴 고백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앓아누웠다. 무리한 스케줄과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병들어 몸까지 망가졌다.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앓아눕고 나서야 알았다. 버티는 시간이 결코 괜찮지 않았음을.
인생을 살면서 악과 깡으로 견디는 시간이 언제든 오겠지만, 그 시간을 전부 이렇게 버티다가는 뼈가 삭을지도 모르겠다. 미움과 원망, 이 같은 감정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병을 만드는데, 그런 감정으로 버텨야 한다면 궁극적으로 기쁨과 만족을 누려야 할 때 행복이란 감정이 남아 있을까?
진심으로 응원했고, 누구보다 후배가 열심히 해 왔다는 걸 알았지만, 그저 버티라고만 말한 것 같아 그녀에게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과거의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버티기' 말고 필요한 '휴식'에 대해 생각한다. 한판승을 위해서는 버텨야 하는 마지막을 충분히 채워야 다치지 않고 경기를 끝낼 수 있다. 음식과 잠, 여행도 좋은 휴식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처음 마음 '초심'을 떠올렸다.
그녀가 이 공부를 선택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현실이 돼가고 있는 중임을 기억한다면 버티는 지금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와 희망, 감사가 늘어나면서 버티는 마음에 악이나 깡, 미움과 지침 같은 나쁜 감정의 크기가 줄어들길 바랬다.
다행히 그날 우린 행복한 상상으로 기분 좋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한 삶이니, 버티는 지금도 행복할 수 있도록 지킬만한 것 중 마음을 지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