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이 있다.
나는 자주 이 가사가 맴돈다. '님'과 '남'사이에는 고작 점 하나. 한 끗 차이로 변하는 게 세상에 많다.
내게 겸손과 교만이 그렇다.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불편해졌다. 세상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전심을 다해 거부했다.
그러면서 작은 지적에는 한 없이 움츠러들었다.
수정이 필요해 실수한 부분을 알려주는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누군가의 팩트에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만약 짧은 시간 사이 같은 실수를 한 반복한 경우에는 아예 무덤을 파고 들어갔다.
시작은 겸손이었을지 모른다.
칭찬에 자만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함으로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자세. 하지만 과도한 겸손은 상대의 선한 마음을 거절하고, 순수한 뜻을 왜곡하는 문제를 낳았다. 더욱이 자꾸 움츠러드는 자세는 주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오만함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겸손이 보기 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건 제삼자가 남긴 한 줄의 댓글을 통해서였다. 사용하고 있는 SNS 계정 중 드라마 대사를 캘리그래피로 작업해 업로드하는 계정이 있다. 들리는 대사를 그대로 옮겨 적다 보니 오타가 빈번했다. 그러면 인친분들이 다음 작업에 참고하라며 오탈자를 댓글로 알려주신다. 모두 부족함을 나무라는 것이 아닌 상냥한 알림이다. 문제는 당시 오탈자 실수가 잦았다는 점이다.
발 끝에 가버린 자존감이 인친이 알려준 오탈자 댓글에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을 늘어놓게 했다. 그저 소통하고자 했던 그분의 진심을 내 맘대로 왜곡했고, 그런 나를 그분은 자의적이라고 했다. 제 멋대로 하는 생각, 자의(恣意)적. 따끔한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친한 동생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걸 이제 알았냐며, 그동안 수백 번은 더 말해 주지 않았냐고 울분을 쏟아냈다. 이 자리를 빌려 일깨움을 준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바르게 잡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칭찬은 아직도 쑥스럽고, 질책은 여전히 따갑다. 겸손을 빙자한 교만이 툭, 툭 튀어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깨달았으니 이제 좀 달라지지 않을까? 숨을 한번 참고 달려 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본다. 자의적인 해석을 붙이는 대신 전해지는 진심에 집중하려고 한다.
겸손에는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함이 담겨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위함이 아닌 상대를 위한 겸손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