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어때요?"
당시 나는 금요일을 기점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고, 그녀는 내일이 될 월요일에 마지막 출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음.. 별로 다른 건 없어.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여느 주말 같아. 그런데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에는 조금 멍했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웃기고 안 하는 것도 웃긴.. 뭐 그런?"
"맞아요. 계속 멍하게 돼요. 피아노 레슨 자리 미리 알아봐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있어요. 불안함마저 오래가지 못해요. 금세 또 멍해져서."
밖은 소란하게 비가 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실제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권고사직을 아주 쿨하게 받아들였다. 회사의 사정을 봤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고 예상해서 그런지, 당혹감이 크지 않았다. 되려 난생처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단 생각에 철없이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무덤덤해져 버린 걸까?"
"그런데요 언니. 전 지금이 좋아요. 좀 무덤덤해진 지금이요. 이십 대는 모든 것에 너무 뜨거웠어요."
20대 후반,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때가 생각났다.
내 발로 회사를 나왔으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매일이 불안했던 그 시절. 회사를 그만둔 선택을 자책하기도 했고, 걱정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못 살게 굴던 방황기가 생각났다.
어느 사이 방황은 멈췄다. 어떻게 멈췄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또 일을 하게 되었다. 힘든 순간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지난 회사에서 다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하는 걸 보면, 걱정과 달리 어느 곳에서든 잘 적응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살아졌다. 그러니 이번에도 살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이 아니다. 귀찮고 게을러져서 생각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삶에 지쳐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진 무덤덤한 상태가 아니라, 잘 해쳐 나온 시간들이 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여유를 가져와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당분간 실업급여에 기대어 글을 쓰겠다던 나의 바람은 3주 만에 사라졌다. 사업장이 유지되었고 나는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만약 그 3주를 걱정과 불안으로 보냈다면 복귀 결정이 조금 억울했을 것 같다.
또다시 살아가는 길이 열렸다.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경험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이렇게 단단해진 마음이 반응하는 무덤함을 이제는 염려가 아닌 환영하는 일로 반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