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by 양보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았다. 실로 오랜만에 한 외출이었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간 수치로 입원을 한 뒤 한 주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에 안정 또 안정이라는 주의가 퇴원장에 선명히 적혀있었다. 나는 어쩜 쉬어야지 낫는 병에만 걸리는 건지...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한 주를 더 집에만 있었다. 이 주간 두문불출하고 있자니 사람이 그리웠고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지난 외래 진료에서 호전된 상태를 확인했다. 물론 아직도 정상수치보다 높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몸을 움직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삼주만에 집 밖을 나섰다.


그녀를 보러 연희동으로 향했다.

연희동 카페들은 저마다 풍기는 매력이 달랐으나 다들 햇볕을 좋아했다. 골목 안쪽에 놓인 그 카페도 큼직한 창을 열어 놓고 한 참 높아져 있는 가을 햇살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고개를 한 번만 돌려도 시야에 모두 담기는 작은 카페에는 환한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힙-한 카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인테리어가 참 난감했다. 딱히 테이블도 없고, 긴 일자 모양의 나무가 의자였다. 그 의자에 앉자 등은 자연스레 창문에 기대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 대신 커피 바를 바라보았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몸을 돌려야 했는데, 그 자세보단 커피 바를 바라보고 있는 자세가 편했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카페에서 유일하게 분주한 바리스타를 보고 있었다. 해는 강한 에너지를 상징하지만, 그 아래에 놓여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든 우리와 그곳의 손님들은 햇살 아래 뒹구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대화마저 잊고 그대로 공간과 따스함에 녹아내렸다.


'말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침묵 서말이 꿰어져 보배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저마다의 의견이 활발히 공유되는 '소통'의 시대에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많은 말들에 지칠 때 그녀를 만나, 그녀를 따라 멍을 때린다. 조용함 속에 뇌가 쉬는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이 채워진다. 위로는 말이 아니어도 전해지기에.


재미있는 건 멍 때리기의 대가인 그녀도 강남이나 신사같이 시끌벅적한 동네로 오면 쉽사리 멍을 때리지 못한다. 그래서 집순이, 서초 지박령이라고 불리는 내가 틈만 나면 그녀를 보러 연희동으로 갔다. 그곳에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이 나무를 따라 놓여 있고, 책을 읽고 사색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린 쉽게 침묵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한 참을 앉아 햇살과 곧 겨울에 사라질 따스한 바람을 한껏 누렸다. 아마 올 해가 가기 전, 나는 또다시 그녀를 보러 연희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풍성한 침묵으로 대화를 나눌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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