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었을 때 바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완벽한 후자이다. 시멘트로 지은 다리라고 해도 두드려 보고, 안전진단서까지 확인해도 건너지 않는 측에 속한다.
캘리그라피 작업을 위해 아이패드를 사려고 한 참 알아본 적이 있다. 새 모델이 나온다는 소식에 반년을 기다렸는데, 막상 출시가 되자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다시금 머뭇거렸다. 이 장비가 내게 정말 필요한가? 캘리그라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이만큼의 지출이 과연 합리적인가? 기다리는 동안 수없이 한 고민을 또다시 하고 있었다.
이런 적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가까운 동생은 내가 할까, 말까, 살까, 말까 고민하면 어차피 하지도 않고, 사지도 않을 거 아니냐며 타박을 주곤 했다. 더는 나의 고민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매서움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반박할 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 입틀막.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이패드를 샀다! 고민하느냐 쏟는 시간이 점 점 길어지자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졌다. 정신 건강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통신사 2년 노예를 자처하여 마침내 구매를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나도 답답하다. 성질은 급한데, 시작을 결정하는 일만큼은 세상 느려 터진 내가 나도 싫다. 시원시원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음먹으면 바로 행동하는 그런 사람들은 대범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 여행도 질러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주저 없이 구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족보다 섣부른 결정에서 온 후회가 길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오래 걸렸지만, 아이패드가 생긴 후부터 어디든 함께 하고 있다. 덕분에 꾸준히 글을 쓰고, 디지털 캘리그라피도 시작했다. 그동안은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적는 정통적인 방법으로 캘리그라피 작업을 해왔다면, 아이 팬슬과 일러스트용 어플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나 동영상에 글씨를 올릴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좋아하는 드라마 장면에 대사를 얹힐 수 있게 되면서, 좀 더 풍성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돌고, 돌아 결국 나는 이런 속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생각은 길고, 준비가 필요한 사람. 머뭇거리는 마음이 자꾸 피었다 졌다 하는 게 다소 폼 나진 않지만, 그래도 품은 마음을 마침내 피어내는 사람. 예열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하고 나면 꾸준히 나아가는 거북이 같은 사람. 생각해보니 계주는 꼴찌였지만, 오래 달리기는 언제나 상위 등수에 들었다.
느리더라도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이더라. 다른 사람의 속도로 내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더는 느린 걸음이 아니다. 내 보폭에 맞는 속도였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많은 것을 오래 보고 싶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 나간 사람과 만났을 때, 풍성한 나눔을 해줄 것이다.